헐버트 박사를 아시나요?

조선의 교육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미국인, 그리고 2026년 독후감 공모전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박사를 아시나요?

미국에서 태어나 조선의 젊은이들을 가르쳤고, 한글의 우수성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렸으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이라는 말로 소개되곤 합니다.

헐버트 선생의 생애와 그를 기리는 2026년 독후감 공모전을 소개합니다.


1. 조선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러 온 미국인 교사

1886년, 스물세 살의 미국인 청년 헐버트가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교사로 초빙된 곳은 육영공원(育英公院)이었습니다. 육영공원은 1886년 조선 정부가 설립한 근대식 관립 교육기관으로, 영어와 서양의 학문을 가르쳐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습니다.

헐버트 선생은 이곳에서 영어와 근대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학생 가운데에는 훗날 친일 인물로 알려진 이완용도 있었습니다.

육영공원은 조선이 서양의 학문과 제도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시대의 중요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2. 한글로 세계를 소개한 『사민필지』

헐버트 선생은 조선에 온 뒤 한국어와 한글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특히 한글의 문자 체계와 표현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가 집필한 『사민필지(士民必知)』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지리와 풍속, 자연환경 등을 한글로 설명한 근대적 세계지리 교과서입니다.

당시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헐버트 선생은 한문을 익힌 일부 지식인뿐 아니라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조선 사람들도 세계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는 한국어를 연구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영어로 소개하는 글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한글과 한국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한편, 조선 사람들에게는 세계에 관한 지식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의 활동은 교육과 언어 연구, 저술, 언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3.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국제사회에 호소하다

헐버트 선생의 활동은 교육과 학문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정세가 극도로 불안해지자, 고종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자처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헐버트 선생은 고종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대한제국의 처지를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대한제국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습니다.

1907년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를 계기로 이상설, 이준, 이위종 등 고종이 파견한 특사들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헐버트 선생은 특사들이 헤이그에 도착하기 전부터 유럽에서 언론인들을 만나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영국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W. T. Stead)와 접촉하여 한국의 입장이 국제 언론에 소개될 수 있도록 힘썼으며, 특사들이 각국 대표에게 전달할 호소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참여했습니다. 먼 길을 떠나온 특사들이 낯선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알릴 수 있도록 뒤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도왔던 것입니다. 특사들은 일본의 방해로 평화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국제 언론을 통해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대한제국의 처지를 알렸습니다.

헐버트 선생의 헌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09년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고종으로부터 상하이의 독일계 은행에 예치해 둔 자금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약 25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이 자금은 고종의 내탕금, 곧 황실에서 관리하던 사적 자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미 해당 자금을 인출한 상태였습니다. 헐버트 선생은 이후에도 인출 경위를 조사하고 관련 문서를 수집하며 자금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48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와 서류를 전달하고 자금 반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고종의 부탁을 받은 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그 일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헐버트 선생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면서 일본 당국의 눈엣가시가 되었습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에는 일본 측으로부터 조선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1909년 비밀리에 한국을 다시 찾았지만, 이후에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다가 광복 후인 1949년에야 독립된 한국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이처럼 헐버트 선생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뿐 아니라 고종의 부탁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도 오랫동안 이어 갔습니다.

관련 자료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헐버트 선생 공적 자료」

https://e-gonghun.mpva.go.kr/user/IndepCrusaderDetail.do?goTocode=20003&mngNo=100033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헤이그특사 사건」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40&levelId=kc_i403600

연합뉴스, 「반크 '일본 탈취 고종황제 내탕금 되찾자'…환수 캠페인 전개」

https://www.yna.co.kr/amp/view/AKR20231012067000371


4. 한국인의 미래를 믿었던 『대한제국 멸망사』

헐버트 선생은 1906년 미국에서 『The Passing of Korea』를 출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 멸망사』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일본의 침략으로 위기에 놓인 대한제국의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책의 첫머리에 실린 헌사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헐버트 선생은 고종 황제에 대한 존경과 변함없는 충성을 표하는 한편, 한국인들이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민족정신이 다시 깨어나 '잠은 죽음의 모습일지라도 죽음 그 자체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담긴 책이 출간된 때는 1906년입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기 4년 전, 이미 외교권을 빼앗기고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던 시기였습니다. 헐버트 선생이 당시의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한국인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1906년에 출간된 『The Passing of Korea』의 영어 원문은 위키문헌(Wikisource)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 원문: 『The Passing of Korea』

https://en.wikisource.org/wiki/The_passing_of_Korea

헌사의 한국어 번역과 관련 역사적 배경은 대통령기록관의 「고종의 밀사 헐버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pa.go.kr/portal/contents/stroll/special/view.do?bd_seq=3


5. 한국 땅에 잠든 헐버트 선생

헐버트 선생은 1945년 한국의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1949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지만, 그해 8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에 따라 한국 땅에 묻혔으며, 현재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0년 건국훈장 태극장을 추서했고, 2014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습니다. 헐버트 선생은 조선의 교육과 언어 연구에 기여한 학자이자 교육자였으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외국인이었습니다.


6. 헐버트 선생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책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저자: 김동진

출판사: 참좋은친구

출간: 2019년

부제: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이 책은 헐버트 선생의 성장 과정부터 조선에서의 교육활동, 한국어와 한글 연구, 고종과의 관계,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 등을 폭넓게 소개합니다.

헐버트 선생이 남긴 저술과 편지, 역사적 기록 등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책 표지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참여 기념사업 선정 도서'라는 문구도 실려 있습니다.

헐버트 선생에 대해 처음 알아보려는 독자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와 한글, 근대교육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익한 책입니다.

7. 헐버트 선생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읽는 기회

헐버트 선생은 한국인이 아니었지만 한국의 교육과 문화 발전, 독립을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습니다.

그가 남긴 저술과 활동은 오늘날에도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알아보는 일은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 한국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노력을 기억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이러한 헐버트 선생의 삶과 업적을 알리기 위해 2026년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독후감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학생은 물론 일반인과 재외동포, 외국인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학술적인 글도 환영한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헐버트 선생의 삶을 만나 보시기를 권합니다.


2026년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독후감 공모전

1. 응모 자격

대한민국 국민, 재외동포, 외국인 등 누구나 응모 가능

2. 대상 도서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2019, 김동진)

3. 응모 형식

대상 도서에 대한 응모자의 감상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술

헐버트의 논문 번역서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와 연관한 학술적 글 환영

4. 시상 내역

상명인원상금 및 상장
무궁화상1명1,000,000원 및 국가보훈부 장관상
백두상2명각 700,000원 및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상
한라상3명각 600,000원 및 독립유공자유지계승유족회 회장상
아리랑상5명각 500,000원 및 서울YMCA 이사장상
아리랑상(학생부)3명각 100,000원 및 국악신문 대표상

수상작은 책으로 엮어 대외적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5. 원고 분량

200자 원고지 20매 이상 또는 A4 용지(바탕체 11포인트) 3쪽 이상

상한 제한 없음

6. 원고 제출

전자우편: hulbert0126@daum.net

또는 주최 측 사무실 방문 접수

원고 제출 시 연락처 및 기본 인적 사항(주소, 전화번호, 소속 등) 기재

7. 응모 마감

2026년 11월 15일

8. 심사

관련 학자를 포함한 심사위원단을 구성하여 심사

9. 결과 발표 및 시상식

결과 발표: 2026년 11월 30일 전후

수상자에게 개별 통지

시상식: 2026년 12월 17일 예정

시상식에 불참하는 수상자는 수상에서 제외됩니다.

10. 유의 사항

제출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수상작의 인쇄·출판 등에 관한 저작권은 본 기념사업회가 소유합니다.

공모전 요강은 기념사업회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11. 주최 및 공동주관

주최: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공동주관: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서울YMCA

후원: 국가보훈부, 마포구청, 기독교대한감리회, 독립유공자유지계승유족회, 서울YMCA, 국악신문, 한글학회, 한글누리, 한문화재단

12. 문의 및 연락처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The Hulbert Memorial Society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지길 46, 독립유공자복지회관 202호

전화: 02-3142-1949

팩스: 02-326-1863

홈페이지: www.hulbert.or.kr

※ 공모전 정보는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의 2026년 공모전 안내문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세부 사항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응모 전에 주최 측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