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가

우리는 흔히 자신이 경험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누군가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현실의 사물과 현상을 일정한 방식으로 구분하고 개념화하여 표현하는 수단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언어로 표현할 때에는 이미 그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간의 인식이 개입하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실제 세계의 현상들과 연결되는 양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가을이 오다', '비가 오다', '잠이 오다', '철수가 오다'라는 표현에서 사용된 '오다'의 실제 현상은 서로 다르다. 가을이 오는 것은 일조량 변화와 더불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이고, 비가 오는 것은 대기 중 수증기가 응결하여 물방울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잠이 오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며, 철수가 오는 것은 사람의 공간적 이동이다. 상당히 다른 여러 가지 현상을 하나의 동사로 표현한다. 이는 언어 표현과 현실의 현상이 반드시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속적인 현실을 구분하는 언어

언어와 현실의 관계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언어학자 윌리엄 라보브(William Labov)는 다양한 형태의 그릇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어떤 것을 '컵(cup)'이라고 부르는지 조사하였다. 그릇의 높이와 너비, 형태가 달라지면 컵이라고 판단하는 범위도 달라졌으며, 그릇의 용도와 같은 맥락 역시 명명에 영향을 미쳤다. 현실에는 수많은 형태의 그릇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컵'이라는 단어의 적용 범위에는 언제나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컵이라고 부르는 물건을 다른 사람은 그릇이나 잔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적 범주가 현실의 사물들과 고정된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의 온도를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물의 온도는 연속적으로 변하지만 우리는 '차갑다', '시원하다', '미지근하다', '따뜻하다', '뜨겁다'와 같은 몇 개의 표현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같은 온도의 물도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하게 느껴지고, 추운 겨울날에는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마시기 좋은 물인지, 손을 씻기에 적절한 물인지에 따라서도 표현이 달라진다. 물의 온도라는 물리적 조건이 같더라도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상태와 상황, 목적에 따라 언어적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물을 '차갑다'고 표현했다고 해서 그 말만으로 물의 정확한 온도나 그 사람이 경험한 감각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감정은 무수히 다양한 강도와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그 복잡성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얼굴에 나타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여러 감정 상태를 추측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지는 표정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현실은 연속적이고 복잡하며 다면적이지만 언어는 그것을 일정한 범주로 구분하고 이름을 붙여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 대상의 모든 특성을 정확하게 서술한 것은 아니다.


2. 우리는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언어화하는가

경험의 언어화는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은 뒤 그 경험을 기억하고, 기억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을 설명한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에는 수많은 사실과 정황이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모든 내용을 동일한 비중으로 기억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반면 다른 장면은 거의 떠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같은 사건이라도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 결국 경험을 언어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보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고 연결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제 친구와 다툰 일을 떠올릴 경우, "어제 친구에게 모욕을 당해서 상처를 받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제 친구와 오해가 있었고, 나도 감정적으로 반응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어제 친구와 다투면서 내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세 문장은 동일한 사건에 관한 서술일 수 있지만, 각각 자신이 받은 상처, 갈등의 발생 과정과 상호 책임,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 주목한다. 어느 문장이든 실제 경험에 근거할 수 있으나, 사건의 어떤 측면을 선택하고 강조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우리는 사건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며, 그 사실들 사이에 관계를 설정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비가 내렸던 하루도 마찬가지이다. 우산이 없어 신발이 젖었던 불편한 하루로 기억할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던 경험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또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마음이 차분해졌던 하루로 기억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서술들은 같은 날의 서로 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그중 하나만 옳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도 여러 측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가운데 특정한 부분에 주목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건의 의미를 구성한다.


관찰한 사실과 해석한 내용을 구별하기

우리는 자신이 구성한 해석을 사건 자체와 동일시하기 쉽다. 가령 누군가가 대화 도중 내 말을 끊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내 말을 끊었다."라는 문장은 비교적 관찰 가능한 행동에 대한 서술이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상황을 두고 "그 사람은 예의가 없다.", "그 사람은 이기적이다.", "그 사람은 나를 무시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에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성격과 의도에 관한 추론까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 상대방이 무례하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말을 끊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판단은 같은 차원의 정보가 아니다. 말을 끊은 이유가 무엇인지,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은 특정한 상황에서 관찰한 행동만으로 한 사람의 성격과 의도를 단정지을 수는 없음에도 '그 사람이 예의가 없으니까 예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기 판단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지만 그러한 말 속에는 자신이 부여한 특정한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우린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할 때 무엇에 주목할 것인지, 어떤 단어로 명명할 것인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동적으로 선택한다. 특히 강한 감정을 경험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일치하는 정보에 더 주목하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기 쉽다. 그 결과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해석을 사건의 유일한 의미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자신의 언어를 성찰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3. 자신의 언어를 성찰하는 힘

자신이 언어화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메타인지

이 부분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적 활동을 이해하고 점검하며 조절하는 능력을 뜻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살펴보는 것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있는지 스스로 관찰하는 것도 메타인지의 중요한 측면이다. 이를 자신의 언어생활에 적용하면 자신이 경험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과 판단을 언어에 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이 어떤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말에 어떤 해석이 포함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자신의 판단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나는 지금 이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가?',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 가운데 어디까지가 관찰이고, 어디부터가 나의 해석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주목하지 않은 다른 사실이나 정황은 없는가?', '지금의 해석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이러한 질문은 자신이 자동적으로 받아들인 해석을 다시 검토하게 한다. 자신의 언어를 관찰하는 능력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보다 유연하게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신의 욕구와 선택을 발견하는 언어

마셜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는 『비폭력대화』에서 자신의 행동을 외부의 강제나 당위로만 설명하는 언어에 주목하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원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선택하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나는 ~을 원하기 때문에 ~를 하기로 선택했다”] 가령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달갑지 않은 교사가 있다고 해보자. 이 교사는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는 일이 너무 싫어요. 별로 도움되는 것 같지도 않고, 학생들도 부담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성적 평가를 해야 해요. 학교 규칙이거든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돌아본다면 "나는 교사로 계속 일하고 싶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현명한 평가 방법을 고민하기로 (선택)합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두 문장은 같은 상황을 다루지만, 자신이 그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첫 번째 서술에서는 외부의 규칙과 강제성이 강조되는 반면, 두 번째 서술에서는 자신의 욕구와 가치,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드러난다. 학교의 평가 규칙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평가 업무에 따르는 부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차지하는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언어를 성찰한다는 것은 이처럼 익숙한 표현 속에 담긴 자신의 인식과 태도를 돌아보고, 필요한 경우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해 보는 일이 된다.


더 타당하고 문제 해결적인 언어를 선택하기

우리는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언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점에서 선택하고 해석하여 언어화한다. 그리고 그 해석이 언제나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어떤 사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다른 사실과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의 판단이 충분히 타당한지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해석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대응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자신의 언어를 성찰한다는 것은 자신이 구성한 해석을 곧바로 현실의 전부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경험을 보다 정확하고 폭넓게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더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을 넓혀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