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는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을 기반으로 언어를 생성한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방대한 언어 자료에서 학습한 통계적·구조적 패턴을 바탕으로, 현재 주어진 맥락에서 다음에 어떤 토큰(token)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지를 계산하며 언어를 순차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는 단어의 의미적 관계, 문법적 구조, 앞뒤 문장의 관계, 담화의 전개 방식, 글의 장르와 문체 등 복잡한 언어적 관계가 함께 처리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성형 AI는 매우 정교하고 강력한 ‘언어 생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인간처럼 물리적·사회적 세계 안에서 어떤 문제 상황에 직접 처해 있는 당사자는 아니다. 회사의 매출 감소를 경험하거나, 동료와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제한된 예산 안에서 어떤 사업을 실제로 추진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AI가 하는 일의 핵심은 주어진 정보와 맥락을 바탕으로 언어적 관계를 계산하고 그에 적절한 언어적 산출물을 생성하는 데 있다.
인간은 이와 달리 물리적·사회적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직면한다. 조직에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며, 결정에는 실제적인 결과가 따른다. 인간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규정하고, 누구의 이해관계가 관련되어 있는지 살피며,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지 결정하고, 가능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서는 바로 이러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필요해지는 하나의 도구이다.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보고서가 필요할 수도 있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서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제안서가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문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문서를 훌륭하게 작성했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서가 현재의 문제를 정확하게 다루고 있으며 실제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느냐는 것이다.
AI가 좋은 문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는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규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단계가 필요한지 구성하며,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어떤 문서가 필요한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AI에게도 정확하게 요청할 수 있다. AI가 만들어 준 문서를 받은 뒤에도 그것이 내가 필요로 했던 문서인지, 필요한 내용과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현실의 조건과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AI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AI에게 문서를 작성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분석하고 필요한 과업을 설계한 뒤, 그 과정에서 AI가 맡을 일을 적절하게 지정하고 그 결과를 다시 판단하여 현실의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를 정의하고, 관계를 파악하고, 근거를 검토하고, 대안을 비교하며, 판단의 과정을 조직하는 논리적 사고의 훈련이 중요하다.
© 삶과 언어. 무단 복제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