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장면을 지나간다. 지하철을 타고, 사람을 만나고, 뉴스를 보고, 일을 하고, 물건을 사고, 휴대전화로 정보를 찾는다. 이 모든 일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모든 것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지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현상이 눈에 걸린다. “그런데 왜 이렇지?”, “이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하고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대학생들이 생성형 AI를 이용하여 글을 쓰는 모습은 이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보고 그냥 “요즘 학생들은 AI를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AI가 상당한 수준의 글을 작성할 수 있다면, 대학에서는 이제 글쓰기를 무엇을 위해 가르쳐야 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똑같은 현상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고 생각해야 할 대상으로 붙잡은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수많은 현상 가운데 어떤 것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탐구할 거리를 포착하는 것을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은 사고의 초점을 만들어 준다.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무엇을 더 알아보아야 하는지, 왜 그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지를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문제’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우리말 ‘문제’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기에 ‘문제의식’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 기계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때의 문제와 “이번 연구에서 다룰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할 때의 문제는 같지 않다. 전자는 해결해야 할 곤란이나 결함을 가리키지만, 후자는 생각하거나 탐구해야 할 대상을 가리킬 수 있다.

영어에서는 이 차이를 problem, issue, question, topic 등의 말로 세분하여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성형 AI와 대학 글쓰기’라고 하면 무엇에 관하여 생각할 것인지를 나타내는 넓은 ‘주제 영역(topic)’이다. “생성형 AI가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시대에 대학의 글쓰기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구체적인 ‘질문(question)’이 된다. 여기에서 “AI가 글의 결과물을 상당 부분 대신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대학 글쓰기 교육의 목적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목한다면 논의할 만한 ‘쟁점(issue)’이 된다. 반면 “학생이 AI가 작성한 글을 그대로 제출하여 실제 학습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와 같이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곤란을 가리킨다면 ‘문제(problem)’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반드시 세상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어 비판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현상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지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질문과 탐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존의 설명으로 충분할까?”, “우리는 무엇을 더 알아보아야 할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식의 발현이다.


문제의식은 생각의 출발점을 만든다

문제의식이 생기면 막연했던 관심은 조금씩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일례로, 한 대학생이 학교 앞 카페에 갈 때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어려워하는 노인을 보았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그저 한 사람의 어려움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 키오스크의 확산은 어떤 불편을 만들어 낼까?”라는 생각이 생길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문제의식이 시작된다.

이 문제의식은 다시 여러 질문으로 발전할 수 있다. 화면의 글자가 너무 작아서 어려운 것일까? 메뉴의 분류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결제 단계가 복잡해서일까?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심리적으로 서두르게 되는 것도 영향을 미칠까? 이렇게 질문이 생기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하나의 막연한 장면이었던 것이 탐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문제의식은 단순히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생각할 만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에 가깝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질문을 시작한다.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을 만들어 준다.


주제의식은 ‘그래서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붙잡는다

질문을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사를 시작하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키오스크에 관한 자료를 찾다 보면 고령자의 디지털 기기 이용률도 나오고, 화면 디자인에 관한 연구도 나오고, 무인화에 따른 기업의 비용 절감 문제도 나오고, 장애인의 접근성 문제도 나오며, 디지털 교육에 관한 정책도 발견하게 된다. 모두 흥미롭고 모두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때 필요한 것이 ‘주제의식’이다. 주제의식은 “내가 이 글에서 결국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다.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키오스크 이용의 어려움은 개인의 디지털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기기의 설계와 이용 환경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자료의 선택도 그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의 무인화 비용 절감에 관한 자료가 흥미롭더라도 이 글에서 상세하게 다룰 필요는 없을 수 있다. 반면 글자 크기, 화면 구성, 주문 단계, 이용자의 심리적 부담에 관한 자료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역할이 다르다. 문제의식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포착하는 힘이라면, 주제의식은 ‘그것에 관하여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붙들고 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이 현실의 어느 지점에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면, 주제의식은 그렇게 시작된 생각이 하나의 글로 조직되어 가는 방향을 잡아 준다.


글을 쓰면서 생각은 다시 바뀐다

실제 글쓰기는 문제의식을 정하고 주제를 결정한 뒤 그대로 끝까지 밀고 가는 단순한 과정은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질문이 자료를 찾아보면서 달라질 수 있다. 처음의 생각이 너무 단순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원인보다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앞의 키오스크 사례에서도 처음에는 “노인은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키오스크 이용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이용 장면을 관찰하고 자료를 조사해 보니 이용자의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견될 수 있다. 작은 글씨, 짧은 선택 시간, 익숙하지 않은 메뉴 분류, 여러 단계에 걸친 결제 절차 등이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그러면 처음의 문제의식도 달라진다. “왜 노인은 키오스크를 잘 사용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이 “키오스크의 어떤 설계와 이용 환경이 특정 이용자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뀔 수 있다.

주제의식 역시 이 과정에서 수정된다. 자료를 읽고 관찰하고 글을 써보면서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확한 주장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은 한 번 정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식에서 질문이 생기고, 질문을 따라 탐구하면서 주제의식이 형성되며, 형성된 주제의식에 따라 다시 자료를 살펴보다가 처음의 문제의식을 수정하기도 한다. 좋은 글쓰기에서는 이러한 왕복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이 글을 ‘짜게’ 한다

‘텍스트(text)’라는 말은 라틴어 texere와 관련되어 있다. texere는 ‘짜다, 엮다’라는 뜻을 가진다. 옷감을 만들 때 여러 가닥의 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엮듯이, 글을 쓸 때에도 경험, 관찰, 자료, 생각, 사례를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조직을 만든다.

이 비유로 생각하면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의 역할이 더욱 선명해진다. 현실에는 수많은 재료가 흩어져 있다. 사람들의 행동도 있고, 통계도 있고, 개인적인 경험도 있고, 뉴스도 있고, 연구 결과도 있다. 문제의식은 그 가운데 어떤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붙잡게 한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자.”고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을 하나의 텍스트로 짜는 과정에서는 주제의식이 중요해진다. 어떤 자료를 넣을 것인지, 무엇을 앞에 놓고 무엇을 뒤에 놓을 것인지, 어느 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어느 정보는 생략할 것인지가 주제의식에 따라 결정된다. 주제의식은 글 속에 들어가는 하나의 재료라기보다 여러 재료를 한 방향으로 조직하는 원리에 가깝다.

글을 읽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문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조직 원리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보도 있고 사례도 있고 문장도 있지만 그것들이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를 독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주제의식이 분명한 글에서는 각각의 문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

글의 종류에 따라 이러한 중심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타난다. 연구에서는 ‘연구문제’나 ‘연구질문’이라고 할 수 있고, 논증하는 글에서는 ‘주장’, 설명하는 글에서는 ‘핵심 질문’과 ‘중심 내용’, 이야기에서는 ‘중심 사건’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될 수 있다. 명칭과 형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 밑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무엇에 주목하고 있는가?”, “왜 그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그것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려는가?”

문제의식은 현실에서 생각할 것을 발견하게 한다. 주제의식은 그렇게 시작된 생각이 글이 되어가는 동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붙들게 한다. 그리고 실제 사고와 글쓰기에서는 두 가지가 계속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관찰하다가 질문이 생기고, 질문을 따라 자료를 찾다가 생각이 달라지고, 글을 쓰다가 더 정확한 질문을 발견하고, 그 질문 때문에 다시 글의 중심을 고쳐 잡는다.

글쓰기는 머릿속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생각을 옮겨 적는 일이기보다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질문으로 만들고, 자료와 경험을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점차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문제의식이 “여기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우리의 사고를 깨운다면, 주제의식은 “그래서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그 생각에 방향을 부여한다. 그 두 힘이 오가면서 흩어져 있던 경험과 자료와 생각은 하나의 조직을 갖춘 텍스트로 짜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