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기 한 접시에서 보는 언어와 사고

“나는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 키운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어머니가 이런 말로 시작하는 짧은 글을 올렸다. 제목만 보면 아들과 딸을 편애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뜻밖에 소박하다. 딸기 한 팩을 사 오면 딸에게는 그중 가장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골라 예쁜 접시에 담아 주고, 아들에게는 모양과 상관없이 일단 많이 준다는 것이다. 두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처음에 사용된 ‘차별’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다”, “아이의 성향을 고려한 맞춤형 육아다”라는 반응이 이어졌고, 누군가는 재미있게도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육아”라고 표현했다.

이 짧은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어머니의 행동보다 그 행동을 두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 때문이다. ‘차별’, ‘구별’, ‘맞춤형’이라는 말을 잠시 걷어내고 실제로 일어난 일만 놓고 보면, 어머니가 두 아이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딸기를 주었다는 하나의 행동이 남는다. 그런데 여기에 ‘차별’이라는 말을 붙이면 부당하게 다르게 대우한 행동이 되고, ‘구별’이라고 하면 두 아이의 차이를 인정한 행동이 되며, ‘맞춤형’이라고 하면 각자의 성향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된다. 실제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행동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방식은 상당히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를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나 생각에 이름을 붙이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실에는 처음부터 모든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져 있지 않다. 어느 정도까지가 절약이고 어디서부터 인색함인지, 관심과 간섭은 어디에서 갈리는지, 자신감과 오만의 경계는 어디인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차별과 구별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람들의 행동은 수많은 중간 단계를 가진 채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 어떤 특징을 포착하여 서로 다른 이름을 부여한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연속되어 있던 현실에 하나의 경계가 생긴다. 그리고 그 경계는 다시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차별’과 ‘구별’의 차이는 이러한 언어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 두 단어 모두 사람이나 대상을 서로 다르게 대한다는 점에서는 관련되어 있지만, 우리가 두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에는 이미 상당한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어떤 행동을 차별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을 다르게 대했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차이가 부당하거나 정당하지 않다는 평가가 함께 들어간다. 반대로 같은 행동을 구별이나 맞춤형이라고 표현하면 차이를 두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 전제된다. 결국 우리는 언어를 통해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나누고 관계를 설정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한다.

이러한 현상을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한층 더 흥미로워진다. 아이는 처음부터 차별, 구별, 공평, 배려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먼저 주어지는 것은 구체적인 경험이다. 누나는 예쁜 접시에 담긴 딸기를 받고 자신은 조금 더 많은 딸기를 받는다. 다른 날에는 형과 동생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기도 하고,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무엇인가를 똑같이 나누기도 한다. 아이는 처음에는 이러한 사건들을 그저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듣는다. “그건 차별이야”, “그건 차별하는 게 아니야”,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잖아”, “똑같이 해주는 것만 공평한 것은 아니야”와 같은 말들이다.

아이는 이러한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단순히 새로운 어휘 몇 개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을 ‘차별’이라고 부르는지, 어떤 차이는 ‘구별’이나 ‘배려’라고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다시 말해 단어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에서 현실의 어디에 경계를 그어야 하는지도 함께 배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 다른 여러 경험이었지만 언어를 획득하면서 경험들은 ‘같음과 다름’, ‘공평과 불공평’, ‘차별과 배려’와 같은 범주 속에서 조직되기 시작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이처럼 사물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분류하고 관계 짓고 판단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일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가 언어를 인간의 정신 발달에서 중요한 문화적 도구로 바라본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비고츠키에게 인간은 외부 세계의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여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기호와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경험을 조직하고 행동을 조절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다. 특히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는 처음부터 개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 부모와 아이, 교사와 학생, 아이와 또래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아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을 사용해 보면서 점차 그 의미와 사용 방식을 익힌다.

그러다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말이 점차 아이 자신의 사고를 위한 말이 된다. 어른이 옆에서 “그건 불공평한 일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이건 불공평한데”라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르게 대우받는 두 장면을 보고도 하나는 차별이라고 판단하고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차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사회적 언어가 개인의 내부로 들어와 자신의 경험을 분류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도구가 된 것이다. 비고츠키가 인간의 고등한 정신 기능이 사회적·문화적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할 때 주목했던 중요한 과정이 바로 이러한 변화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어휘를 배운다는 일의 의미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차별’이라는 단어 하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사전에 적힌 뜻 하나를 기억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개념을 이용하여 이전에는 막연하게 지나쳤던 여러 사건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게 되고, 어떤 차이는 정당하고 어떤 차이는 부당한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공정’, ‘형평’, ‘배려’, ‘편견’, ‘특혜’처럼 좀 더 세분된 개념을 배우면 동일한 현실을 더욱 정교하게 분석할 수도 있다. 새로운 언어적 범주를 획득함으로써 이전에는 구별하지 못했던 차이를 발견하거나, 반대로 서로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도 있다. 어휘와 개념의 발달이 사고의 발달과 깊이 관련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언어가 현실을 마음대로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어머니가 실제로 두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분명히 존재하며, ‘차별’이라고 부르느냐 ‘맞춤형’이라고 부르느냐에 따라 그 행동 자체가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그 현실을 직접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문화적 기호를 매개로 현실을 해석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차이를 중요하게 볼 것인지, 서로 다른 사건을 어떤 범주로 묶을 것인지, 그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언어가 깊숙이 관여한다. 그래서 언어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마지막에 덧붙이는 포장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조직하는 과정 자체에 참여한다.

딸기 한 접시를 둘러싼 짧은 이야기가 흥미로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머니가 처음 붙인 ‘차별’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구별’, ‘맞춤형’, ‘고객의 니즈’라는 새로운 말을 가져와 응답했다. 그들은 단어만 바꾼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 범주화하고, 그에 대한 판단도 새롭게 구성했다. 한편 아이들은 이러한 일상의 경험 속에서 어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접하고, 그 언어를 통해 사회가 경험을 나누고 판단하는 방식을 배워간다. 그렇게 사회 속에 존재하던 언어는 조금씩 개인의 사고를 위한 도구가 된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매개한다는 말은 얼핏 매우 추상적인 심리학 명제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과정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차별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배려라고 부를지 이야기하는 평범한 대화, 아이가 어른의 말을 듣고 새로운 단어의 쓰임을 알아가는 순간, 이전에는 막연하게 느꼈던 경험을 어느 날 정확한 말로 표현하게 되는 순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경험에 경계를 긋고, 그 경계를 이용하여 다시 세계를 이해한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보다 먼저 존재했던 사회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방법도 함께 배워간다. 딸기 한 접시에서 시작된 작은 이야기는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문화의 일부가 되고, 다시 한 사람의 사고를 구성하는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