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을 전공한 사람이 왜 뇌에 관심을 갖는가. ‘언어와 뇌’라는 단어 조합만 보면 인문학과 의과학이라는 아주 먼 전공을 오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과 “삶”을 중심에 놓으면 일상의 생존과 긴밀한 것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국어학에는 의미론, 화용론의 영역이 있습니다.

국어학은 자음, 모음, 단어, 문장과 문법을 연구하지만, 언어에는 의미의 영역, 사용의 영역이 있습니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구성하며 상대방은 그 말을 듣거나 읽으면서 의미를 이해합니다. 특히 의미론과 화용론에서는 단어와 문장의 의미뿐 아니라 같은 표현이 상황에 따라 왜 다르게 이해되는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화자의 의도와 맥락이 해석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다룹니다.

“날씨가 춥네요”라는 문장은 기온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칠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다양한 요청이나 제안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벌써 열 시네”라는 말 역시 시간을 확인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무엇을 어찌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글자 형식만으로는 이러한 의미를 모두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발화가 이루어진 상황과 상대방의 의도, 앞에서 이루어진 대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등을 종합하여 의미를 구성합니다. 의미를 연구한다는 것은 결국 언어의 형식과 함께 그것을 이해하는 인간의 인지 과정을 연구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2. 언어의 의미는 인간의 인지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인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접촉을 느끼면서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합니다. 눈앞의 어떤 물체를 보면서 ‘상가’라고 이해하고, 여러 가지 음식 가운데 어떤 것을 ‘밑반찬’이라고 구별하며, 신체의 움직임 가운데 어떤 활동을 ‘준비 운동’이라고 명명하면서 받아들입니다. 무수한 특징 가운데 특정한 요소를 근거로 이해하고 변별하고 판단하며 구분짓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인지 활동과 관련됩니다.

범주화(categorization)와 개념화(conceptualization)는 인지언어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화두입니다. 사람은 조금씩 다른 수많은 대상을 일정한 범주로 묶어서 이해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의자들은 크기와 재료와 모양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의자’라는 하나의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하나의 사건도 어떤 부분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개념화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이미 완성된 생각에 마지막으로 이름표를 붙이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경험을 구별하고 조직하고 이해하는 인지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은유도 아주 흥미로운 화두입니다. 시나 소설에서 문학적인 표현 효과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기본 사유 방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의 추상적 관념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시간은 ‘쓰는 것’이고, 관계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졌다’고 말하며, 어려움에는 ‘부딪히거나 피하고’, 문제의 ‘핵심’을 ‘찾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인 경험을 공간이나 이동, 물체와 같은 다른 경험 영역을 이용하여 이해하는 것입니다. 은유적인 의미 확장은 인간이 복잡하고 추상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인지적 자원이 됩니다.

3. 언어는 우리가 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관여합니다.

감각기관에 어떤 자극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의 의미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냄새라도 그것을 무엇이라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됩니다. 청국장이나 된장의 냄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불쾌하고 이상한 냄새일 수 있지만, 그것을 익숙한 발효식품의 냄새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음식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함께 떠오를 수 있습니다. 코에 들어온 물리적 자극만으로 경험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과 기억, 정서와 문화적 경험이 함께 작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공격’으로 판단하는 것과 ‘위로’로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서와 행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차별’이라고 부르는가, ‘구별’이라고 부르는가, ‘맞춤형 대응’이라고 부르는가에 따라서도 그 행동에 대한 사회적·도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언어는 이미 끝난 인지 활동을 밖으로 표현하는 출력 장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어떤 범주에 넣고 어떤 말로 명명하느냐는 이후의 주의와 기억, 해석과 판단에도 다시 관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보처리는 단순히 ‘감각기관으로 정보를 받아들인 뒤 있는 그대로 저장하는 과정’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감각으로 들어온 정보는 지각되고, 기존의 기억과 지식에 연결되며, 범주화되고 해석되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결정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는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언어는 이 과정의 여러 단계와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언어를 연구하면서 인간의 지각과 기억, 범주화와 추론, 판단과 같은 인지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4. 언어는 인지활동과 밀접하기에 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단어 하나를 이해하는 순간에도 여러 가지 인지 과정이 함께 일어납니다. 말을 들을 때에는 연속되는 소리 가운데 언어적 정보를 식별해야 하고, 글을 읽을 때에는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문자 정보를 처리해야 합니다.

기억에서 관련된 정보를 불러오고 앞뒤 맥락과 연결하며 가능한 의미를 추론합니다. 처음 예상했던 의미가 뒤에 들어온 정보와 맞지 않으면 앞에서 이해했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모두 지각, 주의, 기억, 학습, 범주화, 추론, 예측, 판단 등 여러 인지 기능이 복합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며 인지활동의 생물학적 기반은 뇌입니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언어 활동에는 감각정보의 처리, 주의와 기억, 의미의 통합, 행동의 계획과 조절 등 다양한 기능이 함께 동원됩니다. 의미를 연구하다 인간의 인지를 만나며, 인간이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활동의 사령부가 되는 뇌를 만나게 됩니다. 언어에서 의미로, 의미에서 인지로, 인지에서 뇌로 질문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언어는 인간의 인지활동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인지활동 역시 그것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뇌와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의학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과학 연구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그 결과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다양한 인지 과학 분야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되도록 작은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