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 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출발 조건이 못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사람, 좋은 학벌과 든든한 인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에는 분명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애초에 출발선부터 달랐으니 아무리 노력해 봐야 소용없을 거야’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일들까지 미리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취업난과 경제 위기, 사회적 갈등에 관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수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쏟아진다. 미래를 생각하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뉴스는 본래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건보다 새롭고 놀랍고 예외적인 사건에 주목한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불안과 분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기 쉽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대부분은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마다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 가족을 돌보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키워 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활동이 모여 사회가 유지된다. 이런 일들은 특별한 뉴스가 되기 어렵지만,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우린 모두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중
인생은 광활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일과도 같다. 누군가는 튼튼한 크루즈선을 타고 출발하고, 누군가는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는다. 헤엄을 치거나 노를 저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배의 크기도 다르고 바람과 파도의 조건도 다르다.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젓더라도 원하는 항구에 도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때로는 거센 파도를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떠밀려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루가 지나고, 한 해가 지나고, 나이를 먹는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삶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바다를 살피고, 바람을 읽고,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일에도 삶의 의미가 있다. 항해하는 동안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몰랐던 것을 배우고, 때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웃을 수도 있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을 구분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걱정하지만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코비는 바로 그 영역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비폭력 대화를 정립한 마셜 로젠버그 역시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는 무엇을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을 선택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작은 일들이 쌓여 삶이 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소용 있는지 판단할 때 흔히 눈에 띄는 성과를 떠올린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좋은 직장을 얻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분명한 결과를 기대한다. 그래서 당장 그런 성과를 얻기 어려워 보이면 ‘이렇게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용'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넓혀 보면 어떨까.
오늘 새로운 것을 하나 배웠다면 그만큼 아는 것이 늘어난 것이다.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시도했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건강을 위해 걸었다면 자신의 몸을 돌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작은 온기를 더한 것이다. 그 일들이 당장 대단한 성취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내용은 그만큼 달라진다.
이러한 작은 일들은 눈송이가 내려 쌓이듯 조금씩 축적된다. 한 송이의 눈은 금세 녹아 사라질 만큼 작고 가볍지만, 수많은 눈송이가 쌓이면 온 세상의 풍경을 바꾼다. 우리의 습관과 태도, 지식과 경험, 사람들과 맺어 온 관계도 그렇게 형성된다. 하루하루 자신을 돌보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삶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동안 쌓아 온 건강한 습관과 지식, 신뢰와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더욱 실감하게 된다.
오늘의 삶을 소중히 다루는 일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때로는 노력의 의미를 의심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수 있다. 몸을 건강하게 돌보고,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말을 나누는 일이다. 자신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 봤자 소용없어’라는 말과 ‘지금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말은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주의를 서로 다른 곳으로 이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반드시 찾아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이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건강을 돌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활동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룬다. 대단한 성취만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소중하게 가꾸어 온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의 삶을 깊고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가 정성을 기울여 살아 낸 하루는 그 자체로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 삶과 언어. 무단 복제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