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를 바라보며
1
상처가 났다. 살아가다 보면 외부의 세계와 부딪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몸에 상처가 생긴다. 때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생기기도 한다.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상처를 피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다. 운동을 하다가 다칠 수 있다고 운동을 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다가 손을 베었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축구선수나 농구선수 역시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때로 내가 세상과 접촉하고, 움직이고,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흔적이다. 나는 눈앞의 상처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상처는 당장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피는 곧 멎을 것이고 딱지가 앉은 후 새살이 돋으면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좋아지겠지. 근육운동 후 통증이 가라앉으면서 회복 시간을 지나 또 다시 운동이 가능해지듯이, 그러면서 더 단단해질 거다. 한 번 부딪쳐 보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거고. 내 몸으로 겪어 보았으니 사람이며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 상처가 생긴다는 건 내가 꼭 잘못 살아서가 아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갔고, 움직였고,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경험을 얻었다. 상처가 아물면 나는 그 경험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2
상처가 났다. 아프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괜히 움직였다. 왜 하필 내게 그랬을까. 왜 나한테,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한 걸까? 난 그때 왜 바로 피하지 못했을까. 그 인간이 ~하는 바람에. 조금 더 조심했더라면, 애초에 그 자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런 고통은 없었을 텐데...
상처를 얻기 전보다 불편하다. 이전보다 약해진 거 같아. 멀쩡했는데 이게 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지. 그런 인간과 상종하지 말자.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아. 그럼 손해라도 안 보지. 외롭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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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입는 일은 내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위 두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난 생각이나 감정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반응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 사건의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주변의 어떤 사람이나 사건과 연결된 문제로 볼 것인지는 사람마다 본인 스스로 결정하는 영역이 된다. 곧 ‘자신에게 주어진 몫’으로 볼 수 있다. 상처를 경험의 일부로 볼 것인지 손상의 증거로 볼 것인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행위의 자산으로 여기거나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이유로 삼는 것은 자신이 머릿속에서 수행하는 고유한 행위에 해당한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생각과 판단은 서서히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만들고, 무엇을 좇고 무엇을 피할지, 무엇을 반기고 무엇을 꺼릴지가 서서히 고정된다. 상처의 자극은 외부에서 주어졌더라도 그 후의 생각과 판단, 마음의 작용까지 외부 세계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 언어가 깊이 관여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실패’, ‘배신’, ‘실수’, ‘시련’, ‘경험’, ‘배움’ 가운데 무엇으로 명명하고 반복해서 말하느냐에 따라 사건은 다른 의미의 연결망 속으로 들어간다. 서로 다른 경험의 범주에 놓이게 된다. 어떤 단어를 듣거나 말할 때 그와 결합된 기억과 감정, 판단과 생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언어는 이미 일어난 일을 표현하는 데에 한정되지 않고, 경험을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후에 발생하는 장면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래서 언어의 작용과 사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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