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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재문집 제3책 제63장 앞면— 임진왜란 후 밀양 사람이 됨

최근 수정 2026.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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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책 · 제63장 · 앞면 · 기타

원문과 음독

寧福謹識(영복근지) 行狀(행장) 公諱泰直 字敬夫 姓權氏 本貫安東(공휘태직 자경부 성권씨 본관안동) 始祖諱幸 以羅末豪族歸高麗 功在民社 至今享安東太師廟(시조휘행 이나말호족귀고려 공재민사 지금향안동태사묘) 其後屢有名公巨卿 輝映史乘(기후누유명공거경 휘영사승) 自麗入鮮 益繁衍 爲國中大姓之一(자려입선 익번연 위국중대성지일) 鮮之中葉 有諱三變 自丹城徙密陽(선지중엽 유휘삼변 자단성사밀양) 値壬辰倭亂 一境魚肉 而能以智自全者 卜居于玆 因爲密陽人(치임진왜란 일경어육 이능이지자전자 복거우자 인위밀양인) 有諱淑 號啞聾 有諱相協 號掘窟 是公曾祖及祖考也(유휘숙 호아롱 유휘상협 호굴굴 시공증조급조고야) 考諱重禹 號荷汀(고휘중우 호하정) 妣瑞興金氏 寒暄堂先生后 錫振女(비서흥김씨 한훤당선생후 석진녀) 以高宗丙戌六月十九日 生公于伎良里第(이고종병술유월십구일 생공우기량리제) 幼聰敏 不煩長者督勵 而自力課……(유총민 불번장자독려 이자력과……)

현대어 직역

영복이 삼가 기록한다. 행장. 공의 휘는 태직이고 자는 경부이며, 성은 권씨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시조의 휘는 행이다. 신라 말기의 호족으로 고려에 귀의하여 나라와 백성에게 공을 세웠으며, 지금까지 안동 태사묘에 배향되고 있다. 그 뒤로 이름난 공경과 높은 대신이 여러 차례 나와 역사 기록을 빛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자손이 더욱 번성하여 나라의 큰 성씨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조선 중엽에 휘가 삼변인 분이 있었는데, 단성에서 밀양으로 이주하였다. 임진왜란을 만나 온 지역의 백성이 참혹한 화를 입었으나 지혜로 자신을 온전히 보전하였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밀양 사람이 되었다. 휘가 숙이고 호가 아롱인 분과, 휘가 상협이고 호가 굴굴인 분이 있었으니, 이분들이 공의 증조부와 조부이다. 아버지의 휘는 중우이고 호는 하정이다. 어머니는 서흥 김씨로 한훤당 선생의 후손이며, 석진의 따님이다. 고종 병술년 6월 19일에 기량리의 집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여 어른들이 번거롭게 독려하지 않아도 스스로 힘써 공부하였다…….

현대어 의역

영복이 삼가 평재 권태직의 행장을 기록한다. 평재의 이름은 태직, 자는 경부이며 안동 권씨이다. 그의 집안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안동 태사묘에 배향된 권행을 시조로 한다. 이후 여러 대에 걸쳐 이름난 인물을 배출하며 크게 번성한 명문이었다. 조선 중엽에 선조 권삼변이 단성에서 밀양으로 옮겨 왔다. 임진왜란으로 지역 전체가 참혹한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지혜롭게 목숨을 보전하였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밀양의 입향조가 되었다. 증조부는 아롱 권숙, 조부는 굴굴 권상협이며, 아버지는 하정 권중우이다. 어머니는 한훤당 김굉필의 후손인 서흥 김씨로, 김석진의 딸이었다. 권태직은 고종 병술년인 1886년 6월 19일 기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다른 사람의 재촉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공부에 힘썼다.

참고

行狀(행장): 죽은 사람의 가계·출생·학문·행적·성품을 기록한 글. 묘지명이나 전기를 지을 때 기초 자료로 사용하였다. 諱(휘): 돌아가신 사람의 이름을 높여 이르는 말. 字(자): 성인이 된 뒤 본명 대신 사회적으로 사용한 이름. 權幸(권행): 안동 권씨의 시조. 본래 성은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를 도운 공으로 권씨 성을 받았다고 전한다. 羅末(나말): 신라 말기. 民社(민사): 백성과 사직, 곧 나라와 사회. 安東太師廟(안동 태사묘):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김선평·권행·장정필을 제향하는 안동의 사당. 史乘(사승): 역사책 또는 역사 기록. 自麗入鮮(자려입선):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三變(삼변): 밀양 지역에 정착한 안동 권씨 선조의 이름. 정확한 계보는 족보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魚肉(어육): 물고기와 고기처럼 마구 짓밟히거나 살육당함. 전란으로 백성이 참혹하게 희생된 상황을 표현한다. 卜居(복거): 살 곳을 정하여 거주함. 啞聾(아롱): 권숙의 호. 글자 그대로는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함’을 뜻하지만, 세속의 말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은자의 뜻을 담은 호일 수 있다. 掘窟(굴굴): 권상협의 호로 기록되어 있다. 정확한 독음과 유래는 집안 자료를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荷汀(하정): 권중우의 호. 瑞興金氏(서흥 김씨): 사진의 본관 글자는 ‘瑞興’으로 판독하였다. 寒暄堂先生(한훤당 선생):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굉필을 가리킨다. 서흥 김씨를 김굉필의 후손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丙戌(병술): 고종 연간의 병술년은 1886년이다. 따라서 이 기록에 따르면 권태직은 1886년 음력 6월 19일 출생이다. 伎良里(기량리): 권태직이 태어난 마을 이름. 현재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밀양 지역 지명 자료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이 면의 마지막 自力課(자력과)는 뒷면의 讀甫成童(독보성동)으로 이어져, “스스로 힘써 공부하여 겨우 소년이 되자……”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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