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과 음독
年丙申二月二十五日 返葬于故土華岳山麓小山上頂癸坐之原(년병신이월이십오일 반장우고토화악산록소산상정계좌지원)
配一直孫氏 承憲女 格齋聲瑞后(배일직손씨 승헌녀 격재성서후)
丙午二月二十一日卒 葬于公合窆(병오이월이십일일졸 장우공합폄)
有三男三女(유삼남삼녀)
長寧福 卽不肖 次寧軾寧敏(장영복 즉불초 차영식 영민)
女李炳允 權芝永 朴炳銘(녀이병윤 권지영 박병명)
寧福男 五喆(영복남 오철)
寧軾男 五鉉 五平 五珍 五基(영식남 오현 오평 오진 오기)
寧敏男 彰勳 五鍾(영민남 창훈 오종)
餘不盡錄(여부진록)
嗚呼 今距府君之歿 忽忽已十有九年(오호 금거부군지몰 홀홀이십유구년)
隧道願刻 不敢不及時(수도원각 불감불급시)
惟其志德文章之表表可傳者 載在遺書 非不肖小子所敢贊一辭(유기지덕문장지표표가전자 재재유서 비불초소자소감찬일사)
然獨以侍膝下四十有年 其所目擊於氣象言貌(연독이시슬하사십유년 기소목격어기상언모)
與夫理欲應物之細行微節 有不敢沒者(여부리욕응물지세행미절 유불감몰자)
故玆敢撰實錄 行以質當世秉筆之賢云爾(고자감찬실록 행이질당세병필지현운이)
歲己酉至月初吉日(세기유지월초길일)
不肖男寧福謹撰(불초남영복근찬)
현대어 직역
7년 뒤인 병신년 2월 25일, 고향 화악산 기슭의 작은 산 정상에 있는 계좌의 언덕으로 돌아와 장사 지냈다.
배위는 일직 손씨로 승헌의 딸이며, 격재 성서의 후손이다.
부인은 병오년 2월 21일에 세상을 떠나 공과 합장하였다.
아들 셋과 딸 셋을 두었다.
맏아들은 영복, 곧 이 글을 쓴 불초자이고, 다음은 영식과 영민이다.
딸들은 이병윤·권지영·박병명과 혼인하였다.
영복의 아들은 오철이다.
영식의 아들은 오현·오평·오진·오기이다.
영민의 아들은 창훈·오종이다.
나머지는 모두 기록하지 않는다.
아아, 지금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때로부터 어느덧 19년이 지났다.
묘도에 글을 새기려는 소원을 더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의 뜻과 덕과 문장 가운데 뚜렷하여 후세에 전할 만한 것은 유고에 실려 있으므로, 불초한 아들이 감히 한마디라도 보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홀로 아버지의 슬하에서 40여 년을 모셨으므로, 그 기상과 말씀과 모습을 직접 보았다.
또한 이치와 욕망을 분별하고 사물에 대응할 때 보이신 세세한 행동과 작은 절도 가운데 감히 묻히게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에 감히 사실에 근거한 기록을 지어 당대에 붓을 잡은 어진 이들에게 질정하고자 한다.
기유년 11월 초 길일에,
불초한 아들 영복이 삼가 짓는다.
현대어 의역
평재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에 장사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 망우리에 임시로 모셨다. 7년 뒤인 병신년, 곧 1956년 음력 2월 25일에 유해를 고향의 화악산 기슭으로 옮겨 정식으로 안장하였다.
부인은 일직 손씨로 손승헌의 딸이며 격재 손성서의 후손이었다. 부인은 병오년에 세상을 떠나 평재와 합장되었다. 두 사람은 세 아들과 세 딸을 두었고, 이어 여러 손자를 두었다.
아들 권영복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9년이 지난 뒤 묘에 새길 글을 마련하기 위해 이 행장을 작성하였다. 평재의 학문·사상·문학적 업적은 이미 유고에 충분히 남아 있으므로 자신이 덧붙여 칭송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다만 아버지를 40여 년 동안 가까이 모시면서 직접 본 인품과 말과 행동, 그리고 일상의 작은 실천만큼은 사라지게 둘 수 없었다.
따라서 권영복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실을 기록하고, 당대의 학식 있는 문장가에게 묘문 작성을 부탁하기 위한 자료로 이 행장을 남겼다. 이 글은 기유년인 1969년 음력 11월 초에 작성되었다.
참고
返葬(반장): 임시로 장사 지냈던 유해를 고향이나 본래 정한 묘소로 옮겨 다시 장사 지냄.
丙申(병신): 문맥상 1956년. 경인년인 1950년에 사망한 뒤 ‘7년 뒤’라고 한 것은 처음 해를 포함하여 세는 전통적 계산법에 따른 것이다.
華岳山(화악산): 평재가 최종적으로 안장된 고향의 산. 정확한 현재 위치는 밀양 지역의 지명·묘역 자료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癸坐(계좌): 묘가 계방, 곧 북쪽에서 동쪽으로 15도 기운 방향을 등지고 자리 잡았다는 풍수상의 표현이다.
配(배): 죽은 남성의 행장이나 묘문에서 아내를 이르는 말.
一直孫氏(일직 손씨): 본관이 일직인 손씨 가문. 오늘날에는 ‘일직 손씨’와 ‘안동 손씨’의 관계를 족보 자료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格齋聲瑞(격재 성서): 호가 격재이고 이름이 성서인 손씨 선조로 보인다.
合窆(합폄): 부부의 관이나 유해를 같은 묘역에 함께 묻음.
不肖(불초):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아버지를 닮지 못한 부족한 아들’이라는 뜻이다.
사진에서는 세 딸의 배우자 이름이 李炳允·權芝永·朴炳銘으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판독하였다. 정확한 혼인 관계와 독음은 족보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隧道願刻(수도원각): 묘도, 곧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에 고인의 행적을 기록한 글을 새기고자 함.
志德文章(지덕문장): 고인의 뜻과 덕행과 문학적 업적.
表表(표표): 매우 뚜렷하고 뛰어나 세상에 드러날 만함.
遺書(유서): 죽기 전에 남긴 편지라는 현대적 의미가 아니라, 고인이 남긴 저술과 원고 전반을 뜻한다.
侍膝下(시슬하): 부모의 곁에서 모시고 생활함.
理欲(이욕): 천리와 인욕. 도덕적으로 마땅한 이치와 개인적인 욕망을 분별하는 성리학적 개념이다.
應物(응물): 사람과 사물을 만나 상황에 맞게 대응함.
細行微節(세행미절): 일상에서 드러나는 세세한 행동과 작은 절도.
實錄(실록): 과장하지 않고 실제로 보고 겪은 사실을 기록한 글.
質當世秉筆之賢(질당세병필지현): 당대에 글을 잘 짓는 현명한 사람에게 보여 잘못을 바로잡고 평가받음. 행장을 바탕으로 묘갈명이나 묘지명을 지어 달라는 뜻도 포함한다.
己酉(기유): 문맥상 1969년. 1950년 사망 후 19년이 지났다는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至月(지월): 음력 11월을 가리키는 별칭.
이 행장의 지은이는 평재의 맏아들 권영복이며, 다음 면의 寧福謹識은 “영복이 삼가 기록한다”는 맺음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