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6 · 기타 · 조회 1

평재문집 제3책 제63장 뒷면— 러일전쟁 후, 한성으로 가 외국어 학교에 입학

최근 수정 2026. 9. 16.

이 자료는 원문 판독과 번역을 계속 검토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글자와 인명·지명은 확인되는 대로 보완합니다.

제3책 · 제63장 · 뒷면 · 기타

원문과 음독

讀甫成童 以親命遊安禮(독보성동 이친명유안례) 謁李先生晚薰 李先生奭朝之(알이선생만훈 이선생석조지) 及歸 往拜于盧小訥先生相稷(급귀 왕배우노소눌선생상직) 時盧先生自金海來寓密陽(시노선생자김해래우밀양) 建紫巖書堂于東峽之蘆谷(건자암서당우동협지노곡) 負笈而至者數百 公亦執贄以請業 平生爲依歸之地焉(부급이지자수백 공역집지이청업 평생위의귀지지언) 甲午以後 世道漸棘(갑오이후 세도점극) 及露日戰起 京釜鐵道貫通 密陽候兵彌滿境內(급노일전기 경부철도관통 밀양후병미만경내) 孫聞山貞鉉 與鄕人士設開昌學校于邑中 教子弟以新學(손문산정현 여향인사설개창학교우읍중 교자제이신학) 旣又聚民衆于嶺南樓下 演說時事(기우취민중우영남루하 연설시사) 謂國運垂訖 祖域將盡爲左衽(위국운수흘 조역장진위좌임) 在天下之興亡 匹夫與有責焉 則吾輩不可不奮發相勉(재천하지흥망 필부여유책언 즉오배불가불분발상면) 諄複聲淚俱咽(순복성루구열) 於是密之風氣驟變矣(어시밀지풍기취변의) 公撫卷歎曰 士當識時務 況於斯時乎(공무권탄왈 사당식시무 황어사시호) 遂北走漢城 就學于外國語學校 頻……(수북주한성 취학우외국어학교 빈……)

현대어 직역

공은 스스로 힘써 공부하였고, 겨우 소년이 되자 부모의 명을 받아 안례 지방에 유학하였다. 이만훈 선생과 이석조 선생을 찾아뵈었다. 돌아온 뒤에는 소눌 노상직 선생에게 가서 절하고 제자가 되었다. 당시 노 선생은 김해에서 밀양으로 와서 머물고 있었다. 밀양 동쪽 산골의 노곡에 자암서당을 세웠다. 책을 지고 찾아온 사람이 수백 명이었으며, 공도 예물을 올리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곳은 평생 공이 학문적으로 의지하고 돌아갈 근거지가 되었다. 갑오년 이후 세상의 형편이 점차 험난해졌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경부철도가 개통되면서 밀양에는 일본의 주둔군이 지역 안에 가득 찼다. 문산 손정현은 고을의 인사들과 함께 읍내에 개창학교를 세워 자제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다. 또 민중을 영남루 아래에 모아 당시의 정세에 관해 연설하였다. 나라의 운명이 거의 다하고 조상의 강토가 장차 모두 오랑캐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천하의 흥망에는 평범한 사람도 책임이 있으므로, 우리가 분발하여 서로 힘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거듭 간절히 말하니 목소리와 눈물이 함께 메었다. 이로부터 밀양의 사회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였다. 공은 책을 어루만지며 탄식하여 말하였다. “선비는 마땅히 시대의 형편을 알아야 하는데, 하물며 지금과 같은 때이겠는가?” 마침내 북쪽 한성으로 올라가 외국어학교에 입학하여 자주…….

현대어 의역

권태직은 소년기에 부모의 뜻에 따라 안례 지방으로 유학하여 이만훈과 이석조에게 배웠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 소눌 노상직을 찾아가 정식으로 제자가 되었다. 당시 노상직은 밀양 노곡에 자암서당을 세우고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형성된 학문적 관계는 권태직이 평생 의지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갑오년 이후 나라의 형편은 급속히 어려워졌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경부철도가 개통되면서 밀양에도 일본군이 가득 들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산 손정현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은 개창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치고, 영남루에서 주민들을 모아 나라의 위기를 알렸다. 나라의 운명이 다해 가는 때에는 평범한 선비와 백성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모두가 분발해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였다. 이 연설을 계기로 밀양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권태직도 책만 읽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선비라면 시대의 형편을 알아야 한다”고 탄식하고,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 한성으로 올라가 외국어학교에 입학하였다.

참고

成童(성동): 대체로 열다섯 살 전후의 소년이 됨. 여기서는 아직 어린 학동의 시기를 뜻한다. 安禮(안례): 안동과 예안 일대를 아울러 일컫는 표현으로 보인다. 정확한 유학 지역은 이만훈·이석조의 인물 자료와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李晚薰(이만훈)·李奭朝(이석조): 권태직이 소년기에 찾아가 배운 학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에서는 각각 晚薰과 奭朝로 판독된다. 小訥 盧相稷(소눌 노상직, 1855~1931): 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김해와 밀양 지역에서 강학하였으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紫巖書堂(자암서당): 노상직이 밀양 노곡에 세운 강학 공간. 蘆谷(노곡): 밀양 동쪽 산간 지역에 있던 마을로 보인다. 負笈(부급):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찾아감. 먼 곳으로 유학하는 일을 뜻한다. 執贄(집지): 제자가 되기 위해 스승에게 예물을 올리는 의식. 請業(청업): 스승에게 학업을 가르쳐 달라고 청함. 依歸之地(의귀지지): 정신적·학문적으로 의지하고 돌아갈 근거지. 甲午(갑오): 문맥상 1894년을 가리킨다. 갑오개혁과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하여 전통 사회질서가 크게 변하던 시기이다. 露日戰(노일전):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곧 러일전쟁. 1904년에 시작되었다. 露는 러시아를 가리킨다. 京釜鐵道(경부철도):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 러일전쟁 수행과 식민지 지배를 위한 주요 기반으로 이용되었다. 候兵(후병): 특정 지역에 주둔하거나 경비하는 군사. 여기서는 밀양에 들어온 일본군을 뜻한다. 聞山 孫貞鉉(문산 손정현): 호가 문산이고 이름이 정현인 손씨 인물로 판독된다. 밀양의 근대교육 및 계몽운동 자료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開昌學校(개창학교): 밀양 읍내에 세워져 신학문을 가르친 근대식 학교. 사진의 교명은 開昌으로 판독하였다. 嶺南樓(영남루): 밀양강가에 있는 누각. 이 기록에서는 주민을 모아 시국 연설을 한 장소로 등장한다. 左衽(좌임):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다는 뜻으로, 고전에서는 이민족의 풍속이나 이민족의 지배를 상징한다. 天下之興亡 匹夫與有責焉(천하지흥망 필부여유책언): 천하의 흥망에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 명말·청초의 학자 고염무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諄複(순복): 같은 뜻을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거듭 말함. 識時務(식시무): 시대의 형편과 당면 과제를 정확히 파악함. 外國語學校(외국어학교): 대한제국기에 외국어와 근대학문을 가르친 관립 교육기관. 다음 면을 확인해야 권태직이 구체적으로 어느 학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頻(빈)은 다음 면의 문장으로 이어지는 글자이므로, 뒤 페이지와 연결하여야 완전한 문장을 확정할 수 있다.
정정·제보하기

제3책 · 제63장 · 뒷면 ·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