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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재문집 제3책 제64장 앞면— 법원 근무, 3.1운동, 동포를 위함, 관직을 버리고 다시 전통 의관

최근 수정 2026.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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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책 · 제64장 · 앞면 · 행장

원문과 음독

用力於西洋利用厚生之學(용력어 서양 이용후생지학) 庚戌國竟不祀 倭人執權 毒流全域(경술 국경불사 왜인집권 독류전역) 公以爲我民之被抑壓宛在者 多由不明于法律(공이위 아민지 피억압완재자 다유불명우법률) 東渡玄海 肄政法學于江戶 歷數年還國(동도현해 이정법학우강호 역수년환국) 托跡于法院 懷以故護我同胞之權利爲己務(탁적우법원 회이고호아동포지권리위기무) 其在達府也 値己未萬歲運動(기재달부야 치기미만세운동) 郭侃宇諸公 以邑里長書事 遠繫于倭警(곽간우제공 이읍리장서사 원계우왜경) 公竭力周旋 冀有以緩其獄事 而不得遂 投辭表而歸(공갈력주선 기유이완기옥사 이부득수 투자표이귀) 嗚呼 吾所以亟勉趨世者 欲爲我同胞貢尺寸之效 今也則已矣(오호 오소이극면추세자 욕위아동포공척촌지효 금야즉이의) 蓋反其本也(개반기본야) 因復長髮 復舊儀 自號平齋 說以見志(인부장발 부구의 자호평재 설이견지) 逍遙于鄕里 里在府北二十里 與芝陽及部曲也(소요우향리 이재부북이십리 여지양급부곡야) 後有崇山峻嶺 前有大陂池 池中有小(후유숭산준령 전유대피지 지중유소)

현대어 직역

서양의 이용후생 학문을 익히는 데 힘썼다. 경술년에 나라의 제사가 마침내 끊기고 일본인이 권력을 잡자, 그 해독이 온 나라에 퍼졌다. 공은 우리 백성이 억압받고 꼼짝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은 법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서 도쿄에서 정치와 법률을 공부하고, 여러 해가 지난 뒤 귀국하였다. 법원에 몸담고 있으면서 우리 동포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공이 달성부에 있을 때 기미년 만세운동을 맞았다. 곽간우 등 여러 사람이 고을에서 장서를 올린 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멀리 구금되었다. 공은 그들의 옥사를 완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주선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직서를 내고 돌아왔다. 아아, 내가 서둘러 세상에 나아가 힘쓴 까닭은 우리 동포를 위하여 작은 도움이나마 바치고자 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끝났다고 여겼다. 이에 자신의 근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다시 머리를 길러 옛 의관을 회복하고 스스로 ‘평재’라 호하였으며, 글을 지어 그 뜻을 드러냈다. 향리에서 한가롭게 지냈는데, 그 마을은 관아 북쪽 20리에 있었으며 지양과 부곡에 인접하였다. 뒤에는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가 있고 앞에는 큰 못이 있었으며, 못 가운데에는 작은…….

현대어 의역

평재는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의 실용 학문과 정치·법률을 공부하였다.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뒤에는 조선인이 억압받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법률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고, 귀국하여 법률 실무에 종사하면서 동포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1919년 3·1운동 때 지역 인사들이 일본 경찰에 붙잡히자 그는 이들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포를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세상에 나갔지만 식민지 현실 속에서는 더 이상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뒤에는 머리를 다시 기르고 전통 의관을 갖추었으며, ‘평재’라는 호를 사용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밝혔다. 그는 산과 못으로 둘러싸인 고향에서 전통적 선비의 삶으로 돌아갔다.

참고

利用厚生(이용후생): 기물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백성의 생활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 실용 학문과 근대적 기술·제도를 포괄하는 표현이다. 庚戌國竟不祀(경술 국경불사): 1910년 경술국치를 가리킨다. ‘나라의 제사가 끊겼다’는 말은 국권과 왕조가 멸망했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玄海(현해): 현해탄.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바닷길을 뜻한다. 江戶(강호): 에도의 한자식 명칭이지만, 이 글에서는 당시의 도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肄政法學(이정법학): 정치학과 법학을 배우고 익혔다는 뜻이다. 평재가 일본 유학 중 법률을 공부했다는 집안의 전승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法院(법원): 사진의 글자는 ‘法院’으로 보인다. 귀국 후 법원 또는 법률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達府(달부): 대구부 또는 달성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己未萬歲運動(기미만세운동): 1919년의 3·1 만세운동. 郭侃宇(곽간우): 인명으로 보이나 정확한 생애와 한자 표기는 별도의 인물 자료 확인이 필요하다. 邑里長書事(읍리장서사): 고을 사람들이 긴 글이나 청원서를 올린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은 지역 독립운동 자료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投辭表(투사표): 사직서를 제출함. 尺寸之效(척촌지효): 자와 치만큼의 작은 공효, 곧 아주 미미한 도움이나 공헌. 反其本(반기본): 본래의 삶과 가치로 돌아감. 여기서는 근대 법률가로서의 사회활동을 접고 전통 선비의 생활로 돌아간 일을 말한다. 復長髮·復舊儀(부장발·부구의): 단발했던 머리를 다시 기르고 옛 의관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일제의 제도와 풍속에서 벗어나 전통적 정체성으로 돌아가려는 상징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平齋(평재): 권태직의 호. 마지막 문장 池中有小(지중유소)는 다음 면의 構曰宛在亭(구왈완재정)으로 이어져, “못 가운데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완재정이라 하였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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