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과 음독
構曰宛在亭 風光絶佳(구왈완재정 풍광절가)
卽公先祖杖屨之所 而歸老而家者數十戶 皆公之族姓也(즉공선조장구지소 이귀로이가자수십호 개공지족성야)
且耕且讀 不問世況 如桃源中人(차경차독 불문세황 여도원중인)
時有儒碩長老至 必命觴于池亭 唱和終夕 風流蕭散(시유유석장로지 필명상우지정 창화종석 풍류소산)
我家與公居爲鄕里(아가여공거위향리)
我王考省軒公 負士林重望 爲守舊規(아왕고성헌공 부사림중망 위수구규)
而別置正進義塾 使從弟退修公爲塾長 而招京鄕新學之士爲塾師 募集生徒(이별치정진의숙 사종제퇴수공위숙장 이초경향신학지사위숙사 모집생도)
人或疑我家急於開化(인혹의아가급어개화)
相愛如愛齋曹公 竟亦貽書 以爲王霸並用之術 非吾儒所宜尙(상애여애재조공 경역이서 이위왕패병용지술 비오유소의상)
而公首先贊同 遣其子姪入塾(이공수선찬동 견기자질입숙)
退修公有邃學宏識(퇴수공유수학굉식)
塾師如李公均鎬 柳公長榮 皆安禮名士也(숙사여이공균호 유공장영 개안례명사야)
公俱與結識 而尤與退修公善(공구여결식 이우여퇴수공선)
佑成兒時 陪退修公往遊池亭 纔入洞 聞公……(우성아시 배퇴수공왕유지정 재입동 문공……)
현대어 직역
그 작은 건물은 ‘완재정’이라 하였는데, 풍광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곳은 곧 공의 선조들이 지팡이와 신을 끌고 노닐던 곳이었다. 늙어서 그곳으로 돌아와 집을 이루고 사는 수십 호가 모두 공의 일가였다.
그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글을 읽고 세상의 형편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니, 마치 무릉도원 속 사람들과 같았다.
때때로 이름난 유학자와 노인이 찾아오면 반드시 못가의 정자에서 술잔을 내게 하고, 밤새도록 시를 주고받았다. 그 풍류가 맑고 한가로웠다.
우리 집안과 공은 같은 고을에 살았다.
나의 할아버지 성헌공은 사림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으며 옛 규범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따로 정진의숙을 세워 종제인 퇴수공을 숙장으로 삼고, 서울과 지방에서 신학문을 배운 선비를 교사로 초빙하여 학생들을 모았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우리 집안이 개화를 너무 서두른다고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서로 친애하던 애재 조공마저도 마침내 편지를 보내, 왕도와 패도를 함께 쓰는 술책은 우리 유학자가 숭상할 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은 가장 먼저 찬성하고 자신의 아들과 조카들을 의숙에 입학시켰다.
퇴수공은 학문이 깊고 식견이 넓었다.
의숙의 교사였던 이균호 공과 유장영 공 등은 모두 안동·예안 지역의 이름난 선비였다.
공은 이들과 모두 교분을 맺었으며, 특히 퇴수공과 친하게 지냈다.
우성이 어렸을 때 퇴수공을 모시고 지정에 놀러 갔는데, 막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공의…….
현대어 의역
평재가 은거한 마을에는 ‘완재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이곳은 그의 선조들이 노닐던 유서 깊은 장소였고, 주변에는 그의 일가 수십 가구가 모여 살았다.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책을 읽고 세상일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마치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들처럼 평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이름난 학자와 어른들이 찾아오면 정자에서 술을 나누고 밤새 시를 주고받았다.
글쓴이의 집안과 평재의 집안은 같은 고을에 살았다. 글쓴이의 할아버지 성헌공은 전통적 유학자로 존경받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정진의숙’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퇴수공에게 학교 운영을 맡기고, 신학문을 배운 교사들을 서울과 지방에서 초청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일부 유학자들은 이것을 지나친 개화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평재는 누구보다 먼저 이 학교의 설립 취지에 찬성했으며, 자기 아들과 조카까지 입학시켰다. 이는 그가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학문과 교육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 준다.
참고
宛在亭(완재정): 못 가운데 세운 작은 정자의 이름. ‘완연히 그곳에 있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杖屨之所(장구지소): 선조들이 지팡이를 짚고 신을 끌며 다니던 곳. 선조가 노닐거나 강학하던 유서 깊은 장소를 뜻한다.
歸老(귀로): 벼슬이나 외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늙음을 보냄.
且耕且讀(차경차독): 농사를 지으면서 글도 읽는다는 뜻. 전통적인 농촌 선비의 생활상을 나타낸다.
桃源中人(도원중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사람들. 세상과 떨어져 평화롭게 사는 사람을 비유한다.
命觴(명상): 술잔을 마련하게 하거나 술을 권함.
唱和(창화): 한 사람이 시를 지으면 다른 사람이 이에 화답하여 시를 짓는 일.
王考(왕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
省軒公(성헌공): 글쓴이의 할아버지의 호와 존칭. 정확한 인물 확인에는 족보나 문집 자료가 필요하다.
正進義塾(정진의숙): 근대식 교육을 위해 세운 사립학교 또는 서당 형태의 교육기관으로 보인다.
退修公(퇴수공): 정진의숙의 숙장을 맡은 글쓴이 집안의 종제. 정확한 성명은 관련 족보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新學(신학): 당시의 서양식·근대식 학문과 교육.
王霸並用(왕패병용): 도덕에 기초한 왕도정치와 권세·공리를 앞세운 패도정치를 함께 사용한다는 뜻. 여기서는 전통 유학과 근대적 실용 학문을 절충하려는 교육을 비판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愛齋曹公(애재 조공): 호가 애재인 조씨 인물. 정확한 성명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邃學宏識(수학굉식): 학문이 깊고 식견이 넓음.
李公均鎬(이공 균호): 이름이 균호인 이씨 교사.
柳公長榮(유공 장영): 이름이 장영인 유씨 교사.
安禮(안례): 안동과 예안을 아울러 부른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지역 인명 자료와 대조할 필요가 있다.
佑成(우성): 이 글의 지은이 또는 서술자의 이름으로 보인다.
(마지막 문장 聞公(문공)은 다음 면으로 이어지므로, 뒤 문장을 함께 보아야 완전한 뜻을 확정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