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과 음독
適出外(적출외)
退修公遽返曰(퇴수공거반왈)
敬夫不在(경부부재)
吾與己盡矣(오여이진의)
其相好之篤有如此也(기상호지독유여차야)
我家刊布星湖李先生遺著(아가간포성호이선생유저)
近畿之學始行於吾嶺(근기지학시행어오령)
吾嶺挽近百年來(오령만근백년래)
汩沒於理氣空談(골몰어이기공담)
至是始知有經世致用實事求是之學(지시시지유경세치용실사구시지학)
公所學素重實用(공소학소중실용)
及讀星湖集大有所契(급독성호집대유소계)
因而沿其流至茶山丁先生與猶堂書(인이연기류지다산정선생여유당서)
尤亹亹講誦不輟焉(우미미강송불철언)
茶山嘗有示二子書曰(다산상유시이자서왈)
中國文明成俗(중국문명성속)
雖窮鄕遐陬(수궁향하추)
不害其成聖成賢(불해기성성성현)
我邦不然(아방불연)
離都門數十里(이도문수십리)
已鴻荒世界(이홍황세계)
矧遐遠哉(신하원재)
凡士大夫家法(범사대부가법)
〔이하 일부 판독 불명〕
屋山阿不失處士之本色(옥산아불실처사지본색)
若仕宦陞顯(약사환승현)
則〔일부 판독 불명〕京華(즉……경화)
不落文章之眼目(불락문장지안목)
公深有感於斯言(공심유감어사언)
丁丑挈其子弟移家(정축설기자제이가)
현대어 직역
마침 공이 외출해 있을 때 퇴수공이 갑자기 돌아와 말하였다.
“경부가 여기에 없으니 내가 함께할 사람은 이제 모두 없어졌구나.”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이와 같이 돈독하였다.
우리 집안에서 성호 이 선생의 유고를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면서 근기 지방의 학문이 비로소 우리 영남 지방에도 전해졌다.
우리 영남은 근래 100년 동안 이기론의 공허한 논의에 빠져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세상을 경영하고 실제 생활에 이바지하는 경세치용과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구하는 실사구시의 학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이 본래 공부한 학문도 실용을 중시하였다. 『성호집』을 읽게 되자 크게 마음에 합치되는 바가 있었다. 그 학문의 흐름을 따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 저술에까지 이르렀으며, 더욱 부지런히 강론하고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산은 일찍이 두 아들에게 보낸 글에서 말하였다.
“중국은 문명이 풍속을 이루었으므로, 비록 궁벽한 시골이나 먼 변방에 살더라도 성인과 현인이 되는 데 방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도성에서 수십 리만 벗어나도 이미 문명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가 되는데, 하물며 아주 먼 곳이겠는가?”
이어 사대부 집안의 법도와 처신을 논하면서, 산야에 거처하더라도 처사의 본색을 잃지 말고 벼슬하여 현달하더라도 학문과 문장을 보는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공은 이 말에 깊이 감동하였다. 정축년에 자제들을 거느리고 집을 옮겼다.
현대어 의역
평재와 퇴수공은 단순한 학문적 지인을 넘어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평재가 자리에 없자 퇴수공은 자신과 뜻을 함께할 사람이 이제 모두 사라졌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평재의 학문이 크게 전환된 계기는 성호 이익의 저술을 접한 일이었다. 당시 영남 학계는 오랫동안 이와 기의 관계를 따지는 관념적 논쟁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나 성호의 저술이 전해지면서 학문은 현실 사회를 바로잡고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경세치용과 실사구시의 관점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본래부터 실용적인 학문을 중시했던 평재는 『성호집』에서 자신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바를 발견하였다. 그는 성호의 학문을 따라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저술까지 탐독하며 끊임없이 토론하고 공부하였다.
특히 다산이 자식들에게 남긴 글은 평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학문적 환경이 부족한 외진 지역에 계속 머물면 자손이 폭넓은 학문과 문화를 접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다산은 산림에 머물 때에는 선비의 본분을 지키고, 벼슬길에 나아갈 때에도 학문과 문장의 안목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평재는 이 가르침을 깊이 받아들였다. 자녀들에게 더 나은 학문적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정축년에 가족을 이끌고 거처를 옮겼다.
참고
退修公(퇴수공): 평재와 매우 가까운 학문적 벗으로 보임. 정확한 성명은 앞쪽 문장이나 인명 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음.
敬夫(경부): 평재 권태직의 자.
刊布(간포): 책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함.
星湖李先生(성호 이 선생):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
近畿之學(근기지학):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형성된 학문. 여기서는 성호 이익으로 이어지는 근기 남인 계열의 실학을 가리킴.
吾嶺(오령): ‘우리 영남’이라는 뜻. 평재와 글쓴이의 지역적 기반을 나타냄.
汩沒(골몰):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져 다른 것을 살피지 못함.
理氣空談(이기공담): 이와 기에 관한 논의를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논쟁으로 비판한 표현.
經世致用(경세치용): 세상을 다스리고 실제 생활에 이바지하는 학문을 추구하는 태도.
實事求是(실사구시): 실제 사실에 근거하여 올바른 이치를 탐구함.
有所契(유소계): 자신의 생각과 깊이 들어맞는 바가 있음.
茶山丁先生(다산 정 선생): 다산 정약용.
與猶堂書(여유당서): 다산 정약용의 저술을 가리킴. 與猶堂은 정약용이 사용한 당호.
亹亹(미미): 부지런히 힘쓰며 게으르지 않은 모습.
講誦(강송): 글의 뜻을 토론하고 소리 내어 읽으며 공부함.
示二子書(시이자서): 두 아들에게 가르침을 보이기 위해 쓴 편지.
窮鄕遐陬(궁향하추):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고장.
鴻荒世界(홍황세계): 문명과 교육이 제대로 미치지 않은 원시적이고 황량한 세계라는 뜻.
矧(신): ‘하물며’라는 뜻.
處士(처사): 벼슬하지 않고 재야에서 학문과 덕을 닦는 선비.
京華(경화): 서울의 번화하고 문명한 지역 또는 그곳의 문화.
丁丑(정축): 평재의 생몰 연대에 비추어 1937년으로 추정됨.
挈其子弟(설기자제): 자녀와 가족을 거느림.
본문 중 다산의 글을 인용한 일부 구절은 인쇄 상태와 촬영 각도 때문에 정확한 판독이 어려움. 다만 전체 취지는 ‘산야에 살더라도 선비의 본분을 잃지 말고, 벼슬하거나 서울에 살더라도 학문적 안목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