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6 · 행장 · 조회 3

평재문집 제3책 제67장 뒷면— 묘소, 자손 이름

최근 수정 202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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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책 · 제67장 · 뒷면 · 행장

원문과 음독

鉉寧福男五喆(현영복남오철) 寧軾男五鉉五平五珍五基(영식남오현오평오진오기) 寧敏男彰焄 勤憲五鐘李男壽衡(영민남창훈오종이남수형) 女許徽權男秉旭秉國(녀허휘권남병욱병국) 女郭東運鄭海珠(녀곽동운정해주) 朴男永桓永權(박남영환영권) 公歿後十二年辛丑(공몰후십이년신축) 寧福君具公狀謁余曰(영복군구공상알여왈) 先良小山上頂白丁之原(선량소산상정백정지원) 卽吾親藏也(즉오친장야) 而闕顯刻敢請銘(이궐현각감청명) 世契所在遂按狀而敍其大者如右(세계소재수안상이서기대자여우) 因爲之銘曰(인위지명왈) 文易發(문이발) 易者易也(역자역야) 時中執中者庸也(시중집중자용야) 操乎易依乎庸(조호역의호용) 隨其變用其中(수기변용기중) 其斯爲公乎(기사위공호) 位良之阡(위량지천) 宰如之封(재여지봉) 餘薰如襲(여훈여습) 惠然其風(혜연기풍) 眞城李東欽撰(구성이동흠찬) 平齋文集卷之六(평재문집권지육)

현대어 직역

영복의 아들은 오철이다. 영식의 아들은 오현·오평·오진·오기이다. 영민의 아들은 창훈·근헌·오종·이남수형이다. 딸은 허휘에게 시집갔고, 권남은 병욱과 병국을 두었다. 딸은 곽동운에게 시집갔고, 정해주는 ……이다. 공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되는 신축년에 영복 군이 공의 행장을 갖추어 나를 찾아와 말하였다. “선친을 모신 묘는 소산 꼭대기의 백정이라는 언덕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묘소를 드러내는 비석의 글을 새기지 못하였으니, 감히 묘갈명을 청합니다.” 우리 집안과 대대로 교분이 있었으므로, 마침내 그 행장을 살펴보고 중요한 내용을 위와 같이 서술하였다. 이어 명을 짓는다. 문채는 변화를 따라 드러나니 역이란 변화하는 것이다. 때에 맞게 중도를 지키니 그것이 용이다. 역의 이치를 잡고 용의 도리에 의지하여, 변화에 따라 그 알맞은 중도를 사용하였으니, 바로 이러한 분이 공이 아니겠는가? 좋은 언덕에 공의 묘소가 자리하였고, 무덤은 단정하게 봉분을 이루었네. 남은 향기가 몸에 스미는 듯하고, 그분의 은혜로운 기풍이 지금도 불어오는 듯하네. 진성 이동흠이 짓다. 『평재문집』 권6.

현대어 의역

영복에게는 아들 오철이 있다. 영식에게는 오현·오평·오진·오기 네 아들이 있다. 영민에게는 창훈·근헌·오종·이남수형이 있다. 딸들 가운데 한 사람은 허휘와 혼인하였고, 권남에게는 병욱과 병국이라는 자녀가 있다. 또 다른 딸은 곽동운과 혼인하였으며, 정해주와도 이어지는 혼인·자녀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평재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난 1961년, 아들 영복이 아버지의 행장을 가지고 이동흠을 찾아갔다. 평재의 묘는 소산 정상부의 ‘백정’이라 불리는 언덕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직 고인의 생애와 덕을 새긴 묘비가 없었다. 이에 영복은 집안과 오랜 교분이 있던 이동흠에게 묘갈명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동흠은 행장에 기록된 평재의 가계와 생애, 학문과 인품을 검토한 뒤 그 핵심을 정리하여 묘갈명을 지었다. 그는 평재의 삶을 『주역』의 ‘변화’와 『중용』의 ‘중도’에 비추어 평가하였다. 평재는 세상의 변화에 휩쓸린 사람이 아니라, 변화하는 형편 속에서도 언제나 알맞은 도리를 찾아 실천한 인물이었다. 학문에서는 옛사람의 뜻을 따르고, 삶에서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중도를 지켰다는 것이다. 이동흠은 묘소에 남은 평재의 덕과 가르침이 향기처럼 후손과 고향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참고

公歿後十二年辛丑(공몰후 십이년 신축): 평재가 1950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신축년은 1961년을 가리킴. 전통적인 햇수 계산에서는 시작한 해를 포함하여 세는 경우가 있음. 寧福君(영복군): 평재의 아들 권영복. 아버지의 행장을 가지고 이동흠에게 묘갈명을 청한 인물. 公狀(공상): 고인의 생애와 행적을 정리한 문서. 여기서는 행장 또는 가장과 비슷한 자료를 뜻함. 先良(선량):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 부른 표현으로 보임. 小山(소산): 평재의 묘가 있는 산 또는 지역의 이름. 白丁之原(백정지원): ‘백정’이라 불리는 언덕이나 산등성이. 여기서 白丁은 신분 명칭이 아니라 묘소가 자리한 지형 또는 지점의 명칭으로 보임. 親藏(친장): 부모의 유해를 모신 묘소. 문맥상 ‘나의 아버지를 장사지낸 곳’이라는 뜻. 顯刻(현각): 고인의 행적을 드러내어 돌에 새긴 글. 여기서는 묘비 또는 묘갈의 명문. 銘(명): 고인의 삶과 덕을 압축하여 운문으로 칭송한 글. 世契(세계): 집안끼리 여러 대에 걸쳐 맺어 온 교분. 按狀(안상): 행장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봄. 易者易也(역자역야): 역(易)의 본질은 변화에 있다는 뜻. 『주역』의 원리를 압축한 표현. 時中(시중): 고정된 한쪽 입장을 따르지 않고 상황과 때에 맞는 중도를 실천함. 執中(집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굳게 지킴. 庸(용): 일상에서 변함없이 실천해야 할 떳떳한 도리. 여기서는 『중용』의 사상을 가리킴. 操乎易依乎庸(조호역 의호용): 변화의 이치를 붙잡고 중용의 도리에 의지한다는 뜻. 隨其變用其中(수기변 용기중): 상황의 변화에 맞추되 그 안에서 가장 알맞은 중도를 실천함. 阡(천): 묘가 있는 길이나 묘역. 宰如之封(재여지봉): 봉분이 안정되고 단정하게 조성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임. 宰如의 정확한 용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함. 餘薰(여훈):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덕과 가르침을 향기에 비유한 표현. 眞城(진성): 진성 이씨를 나타내는 본관 표기로 보임. 李東欽(이동흠): 이 묘갈명을 지은 사람. 이 페이지의 첫 두세 줄은 아들·딸과 손자녀들의 이름을 기록한 계보 부분임. 촬영본에서는 인명 사이의 구분과 일부 글자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족보와 대조하기 전에는 확정된 계보로 사용하지 않는 편이 안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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