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과 음독
跋(발)
此爲吾先子遺著而精神心術之所寓也(차위오선자유저이정신심술지소우야)
小子雖不能知高下淺深之何如(소자수불능지고하천심지하여)
然圖傳於久遠播耀於文苑(연도전어구원파요어문원)
則不敢不極其誠之所至也(즉불감불극기성지소지야)
往在庚寅之亂(왕재경인지란)
小子爲俘久而得免(소자위부구이득면)
則先子已下世(즉선자이하세)
廓然若無所於歸也(확연약무소어귀야)
乃按先子平日所稿之箋(내안선자평일소고지전)
則幸不燬燼於炮火之際(즉행불훼진어포화지제)
如見先子之儀容(여견선자지의용)
如聞先子之笑語(여문선자지소어)
脫稿爲五冊(탈고위오책)
以寓終天之痛者已數十年于茲矣(이우종천지통자이수십년우자의)
伯兄諱寧軾曰(백형휘영식왈)
吾且老人事有不可知(오차노인사유불가지)
刊事盍汲汲(간사합급급)
今爲之(금위지)
兄弟三人合力爲之(형제삼인합력위지)
豈終不成也(기종불성야)
遂以是日起役(수이시일기역)
剞劂爲三冊而付之梓(기궐위삼책이부지재)
鳴呼(오호)
此豈足以報劬勞之恩也(차기족이보구로지은야)
惟其平日(유기평일)
현대어 직역
이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저술로서, 아버지의 정신과 마음가짐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내가 비록 그 글의 수준이 높고 낮은지, 내용이 깊고 얕은지가 어떠한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을 먼 후세까지 전하여 학문과 문학의 세계에 빛나게 하고자 하니, 감히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경인년의 난리 때 나는 포로가 되었다가 오랜 뒤에야 풀려났다. 그러나 그때는 아버지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으므로, 텅 빈 듯하여 돌아갈 곳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에 아버지께서 평소 작성하신 원고를 살펴보니, 다행히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 그 글을 대하니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뵙는 듯했고,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말씀을 다시 듣는 듯했다.
원고를 정리하여 다섯 책으로 만든 뒤, 평생토록 다하지 못할 슬픔을 그 속에 담아 둔 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다.
맏형 영식이 말하였다.
“나도 이제 늙었으니 사람의 일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문집 간행을 어찌 서두르지 않겠는가? 지금 이 일을 시작하여 우리 형제 세 사람이 힘을 합한다면, 어찌 끝내 이루지 못하겠는가?”
마침내 이날부터 간행 작업을 시작하여 세 책으로 판각하고 인쇄에 부쳤다.
아아, 이것으로 어찌 부모님께서 힘들여 길러 주신 은혜에 충분히 보답할 수 있겠는가? 다만 아버지께서 평소에……
현대어 의역
발문
이 책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글과 함께 그분의 정신과 삶의 자세가 담겨 있다. 내가 아버지의 글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높고 깊은지를 감히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글들이 오래도록 전해져 학문과 문학의 세계에서 빛을 잃지 않게 하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나는 포로로 잡혔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풀려났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세상이 텅 비고 돌아갈 곳마저 사라진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께서 생전에 남기신 원고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원고는 전쟁의 포화에도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 원고를 읽을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뵙고, 그분의 웃음과 말씀을 다시 듣는 듯하였다. 나는 이 글들을 다섯 책으로 정리하고, 아버지를 잃은 평생의 슬픔을 그 안에 담아 둔 채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연로해진 맏형 영식이 더는 간행을 미룰 수 없다고 하였다. 사람의 앞날을 알 수 없으니 형제 세 사람이 힘을 합쳐 지금 문집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에 형제들은 마침내 간행 작업을 시작하여 원고를 세 책으로 편집하고 출판하였다. 이것만으로 부모님께서 애써 길러 주신 은혜를 모두 갚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정신과 말씀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문집을 펴낸 것이다.
참고
跋(발): 책의 말미에 편찬·간행 경위와 소회를 적은 글.
先子(선자):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遺著(유저): 고인이 생전에 저술하여 남긴 글.
精神心術(정신심술): 정신과 마음을 쓰는 방식, 곧 내면의 자세와 도덕적 품성을 뜻함. 心術은 문맥상 부정적인 ‘술책’이 아님.
小子(소자):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文苑(문원): 문학과 학문의 세계 또는 문인들의 사회.
庚寅之亂(경인지란): 경인년인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가리킴.
爲俘(위부): 포로가 됨.
下世(하세): 세상을 떠남.
廓然(확연): 텅 비어 의지할 곳이 없는 듯한 상태.
燬燼(훼진): 불에 타 완전히 없어짐.
炮火(포화): 대포의 불길. 여기서는 한국전쟁의 전란을 의미함.
脫稿(탈고): 원고 집필이나 정리를 마침. 여기서는 흩어진 원고를 정리하여 책의 형태로 완성했다는 의미.
終天之痛(종천지통): 부모를 여읜 뒤 평생토록 지니는 슬픔.
伯兄(백형): 맏형.
諱寧軾(휘영식): 맏형의 이름이 영식(寧軾)이라는 뜻. 諱는 돌아가신 사람의 이름을 높여 나타낼 때 사용함. (※맏형은 영복일 듯하여 원본 한자를 여러 번 다시 확인하였으나 이와 같음.)
刊事(간사): 책을 간행하는 일.
盍(합): ‘어찌 아니하는가’, ‘왜 하지 않는가’라는 반문 표현.
汲汲(급급): 일을 서둘러 힘씀.
剞劂(기궐): 본래 판목을 새기는 칼을 뜻하며, 여기서는 목판을 새기거나 책을 간행하는 일을 말함.
付之梓(부지재): 판목에 새겨 책으로 간행함.
劬勞之恩(구로지은): 부모가 자녀를 낳아 힘들여 기른 은혜.
처음 정리한 원고는 다섯 책이었으나 실제 간행본은 세 책으로 편집되었음을 알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