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과 음독
跋(발)
此吾先考平齋府君之遺稿也(차오선고평재부군지유고야)
其始編爲五卷(기시편위오권)
吾伯仲兩兄手自繕寫而彙次者也(오백중양형수자선사이휘차자야)
去年冬就正于丈人曹翁美喆(거년동취정우장인조옹미철)
刪而存之者爲三之一(산이존지자위삼지일)
蓋以文字貴精而不貴多也(개이문자귀정이불귀다야)
府君生丁不辰(부군생정불진)
不求聞達(불구문달)
隱約以卒歲(은약이졸세)
則其身後所遺固難免寂寥而止此(즉기신후소유고난면적료이지차)
然其文其行類發於親戚友朋相與之至性(연기문기행류발어친척우붕상여지지성)
而根本於身心倫理自然之成規(이근본어신심윤리자연지성규)
爲其子姓者實有所不忍泯沒而無傳也(위기자성자실유소불인민몰이무전야)
吾伯兄老且病(오백형노차병)
每慨然以繡梓之役爲憂(매개연이수재지역위우)
況今物態人心朝不保夕(황금물태인심조불보석)
則此事之尤不敢緩也(즉차사지우불감완야)
玆付影印以公諸同好(자부영인이공저동호)
且以藏于家(차이장우가)
爲吾後孫永世之文獻云(위오후손영세지문헌운)
현대어 직역
발문
이것은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 평재 부군께서 남기신 원고이다.
처음에는 다섯 권으로 편집되었는데, 나의 맏형과 둘째 형 두 분이 손수 깨끗이 베껴 쓰고 차례를 모아 정리한 것이다.
지난해 겨울, 어른인 조미철 옹에게 교정을 구하였다. 글을 산삭하여 남긴 것은 원고의 3분의 1가량이니, 글은 정밀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군께서는 불우한 시대를 만나 태어나셨으며, 세상에 이름을 떨치거나 벼슬에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고 곤궁하고 조용하게 생애를 마치셨다. 그러므로 사후에 남은 글이 적고 쓸쓸하여 이 정도에 그친 것은 본래 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글과 행실은 대체로 친척과 벗들이 서로 교유하면서 나눈 지극한 성정에서 나왔고, 몸과 마음을 닦는 윤리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법도에 근본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 자손 된 사람으로서는 이것이 사라져 전해지지 않도록 차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의 맏형은 늙고 병들었으나, 매번 개탄하면서 이 책을 간행하는 일을 걱정하였다. 더구나 지금은 세태와 인심이 아침에 저녁을 보장하지 못할 만큼 불안정하므로, 이 일을 더욱 감히 늦출 수 없었다.
이에 영인하여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또한 집안에 보관하여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전할 문헌으로 삼는다고 한다.
현대어 의역
발문
이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 평재 선생께서 남기신 글을 모은 것이다. 처음에는 맏형과 둘째 형이 아버지의 원고를 직접 베껴 정리하여 모두 다섯 권으로 만들었다.
지난겨울 조미철 어른에게 검토를 부탁하고 글을 엄선한 결과, 원고 가운데 약 3분의 1만을 남기게 되었다. 이는 글의 양보다 내용의 정밀함과 완성도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시대를 잘못 만나 불우하게 사셨다. 명예나 벼슬을 바라지 않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조용하고 검소하게 일생을 마치셨으므로, 세상을 떠난 뒤 남아 있는 글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이 글들에는 친척과 벗을 진심으로 대했던 아버지의 따뜻한 성품과,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 했던 삶의 원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손으로서 이 귀중한 기록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연로하고 병든 맏형도 늘 문집 간행을 걱정하였다. 더구나 세상 형편과 인심이 급속히 변하는 지금, 더는 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원고를 영인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집안에도 오래 보관함으로써 후손에게 영원히 전해질 문헌으로 삼고자 한다.
참고
跋(발): 책의 끝에 붙여 편찬·간행 경위나 감상을 적은 글. 발문 또는 후서라고 함.
先考(선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
府君(부군): 돌아가신 아버지나 조상을 높여 부르는 말.
遺稿(유고): 고인이 생전에 써서 남긴 글.
伯仲兩兄(백중양형): 맏형과 둘째 형 두 사람.
繕寫(선사): 원고를 깨끗하게 정리하여 베껴 씀.
彙次(휘차): 여러 글을 한데 모아 순서를 정함.
就正(취정): 학식 있는 사람에게 자기 글의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청함.
丈人(장인): 여기서는 장인어른이라는 친족 명칭보다 연장자 또는 존경하는 어른을 높여 부른 표현으로 보임.
曹翁美喆(조옹 미철): 조씨 성을 가진 미철이라는 어른. 정확한 인물과 한자음은 족보나 문집의 인명 자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음.
刪而存之者爲三之一(산이존지자위삼지일): 원고를 산삭하여 전체의 약 3분의 1만 남겼다는 뜻.
文字貴精而不貴多(문자귀정이불귀다): 글은 많은 것보다 정밀하고 뛰어난 것이 중요하다는 편집 원칙.
生丁不辰(생정불진): 좋지 못한 시대나 운수를 만나 태어났다는 뜻. 丁은 ‘만나다’, 不辰은 ‘때가 좋지 않음’을 뜻함.
聞達(문달):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고 벼슬길에 나아감.
隱約(은약):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어렵고 검소하게 살아감.
卒歲(졸세): 생애를 마침.
子姓(자성): 자손과 후예.
泯沒(민몰): 자취가 완전히 사라짐.
繡梓(수재): 판목에 글자를 새겨 책을 간행하는 일. 여기서는 문집 출판을 뜻함.
朝不保夕(조불보석): 아침에 저녁 일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위태롭고 불안정함.
影印(영인): 원본을 사진 등의 방식으로 그대로 복제하여 인쇄함.
同好(동호): 같은 학문이나 취향을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