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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재문집 제3책 제66장 뒷면— 서양의 정치·법률·기계 기술, 천문·지리뿐 아니라 토지제도와 조세제도까지 탐구

최근 수정 2026.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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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책 · 제66장 · 뒷면 · 행장

원문과 음독

墓碣銘并序(묘갈명병서) 子曰(자왈) 知欲圓而行欲方(지욕원이행욕방) 吾友平齋權公(오우평재권공) 其有聞於斯歟(기유문어사여) 當國朝末葉(당국조말엽) 西潮東溢(서조동일) 滅常功利也(멸상공리야) 世之陶醉眩目(세지도취현목) 變形易腸者滔滔皆是(변형역장자도도개시) 而其或談道守義者(이기혹담도수의자) 亦膠舊排新(역교구배신) 不知隨時取中之義矣(부지수시취중지의의) 乃公早登吾王考響山公及盧小訥公相稷門(내공조등오왕고향산공급노소눌공상직문) 篤志強學(독지강학) 大本既立(대본기립) 乃謂然數日時務亦不可忽也(내위연수일시무역불가홀야)〔일부 판독 잠정〕 取西學之政治法律器械(취서학지정치법률기계) 綱羅剔抉(강라척결) 定其原委(정기원위) 以至天文地理井制成賦(이지천문지리정제성부) 皆酌古參今(개작고참금) 表著爲施措之需(표저위시조지수) 而顧所守嚴確也(이고소수엄확야) 淨灑亭舍(정쇄정사)〔판독 잠정〕 日與同志講究經傳(일여동지강구경전) 以扶植斯文爲己任(이부식사문위기임) 性命理氣之分(성명이기지분) 日用彝倫之常(일용이륜지상) 表裏交修(표리교수) 始終無缺(시종무결) 徒弟信從(도제신종) 僕隸知化(복례지화) 於乎其盛矣乎(오호기성의호) 公諱泰直(공휘태직) 字敬夫(자경부) 號〔다음 쪽의 ‘平齋’로 이어짐〕(호 평재)

현대어 직역

묘갈명과 서문 공자가 말하였다. “앎은 두루 원만하기를 바라고, 행동은 모나도록 반듯하기를 바란다.” 나의 벗 평재 권공은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조선 말엽에는 서양의 물결이 동쪽으로 넘쳐 들어와, 떳떳한 윤리를 없애고 공리만을 좇는 풍조가 일어났다. 세상 사람들은 그 풍조에 도취되어 눈이 어두워지고, 겉모습과 마음까지 바꾸는 자가 물결처럼 넘쳐났다. 한편 도를 말하고 의리를 지킨다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옛것에만 달라붙어 새로운 것을 배척하며, 시대에 따라 알맞은 중도를 취해야 하는 뜻을 알지 못하는 이가 많았다. 공은 일찍이 나의 조부 향산공과 소눌 노상직 공의 문하에 들어가 뜻을 돈독히 하고 학문에 힘썼다. 학문의 큰 근본을 세운 뒤에는 당시의 현실적인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서양 학문의 정치·법률·기계에 관한 내용을 널리 모으고 자세히 가려내어 그 근원과 전개를 정리하였다. 나아가 천문·지리·정전제·부세 제도에 이르기까지 옛것을 헤아리고 현재의 것을 참고하여, 실제로 시행하고 조처하는 데 필요한 자료로 드러내어 저술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지켜야 할 근본 원칙은 엄정하고 확고하였다. 공은 정사에서 날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경전을 강론하고 연구하였으며, 유학의 도통과 문화를 붙들어 세우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성명과 이기의 구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떳떳한 윤리를 함께 닦아 안과 밖이 서로 어우러졌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결함이 없었다. 제자들은 공을 믿고 따랐고,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가르침에 감화되었다. 아아, 그 교화가 참으로 성대하지 않은가? 공의 이름은 태직이고, 자는 경부이며, 호는 평재이다.

현대어 의역

공자는 참된 지식인은 세상을 폭넓고 원만하게 이해하되, 자신의 행동에서는 반듯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글쓴이는 평재 권태직이 바로 이러한 삶을 실천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평재가 살았던 조선 말기와 근대 전환기는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급속히 밀려들던 시대였다. 새로운 문명에 도취된 일부 사람들은 전통적인 윤리와 가치까지 버리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였다. 반대로 전통을 지킨다는 사람들 중에는 옛것만 고집하고 새로운 지식과 제도를 무조건 배척하는 이들도 있었다. 평재는 이 두 극단 가운데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향산 선생과 소눌 노상직의 문하에서 유학의 근본을 깊이 공부하였다. 그러나 도덕적 원칙을 세웠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서양의 정치·법률·기계 기술을 폭넓게 연구하고, 천문·지리뿐 아니라 토지제도와 조세제도까지 탐구하였다. 그는 새로운 지식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의 지혜와 당대의 현실을 비교하여 실제 사회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하였다. 그럼에도 평재가 지키려 한 윤리적·학문적 근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과 경전을 토론하고 성리학의 주요 문제를 연구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실천하였다. 학문과 생활, 내면과 외면을 함께 닦았기 때문에 제자뿐 아니라 가까이에서 생활한 사람들도 그의 인품에 감화되었다. 이 글은 평재를 단순히 옛 학문을 지킨 유학자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전통의 도덕적 중심을 지키면서도 서양의 정치·법률·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연구한, 근대 전환기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참고

知欲圓而行欲方(지욕원이행욕방): 지식과 판단은 폭넓고 원만해야 하지만 행동과 원칙은 반듯해야 한다는 뜻. 원만한 지적 개방성과 엄정한 도덕적 실천의 결합을 나타냄. 國朝末葉(국조말엽): 조선왕조 말기. 西潮東溢(서조동일): 서양의 문물·사상·제도가 동아시아에 밀려들어 오는 현상을 물결에 비유한 표현. 滅常功利(멸상공리): 변하지 않는 윤리와 도리를 없애고 실질적 이익만을 좇음. 陶醉眩目(도취현목): 새로운 문물과 풍조에 취하여 올바른 판단력을 잃음. 變形易腸(변형역장):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까지 바꿈. 서양 문물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비판한 표현. 滔滔皆是(도도개시): 그러한 사람이 거센 물결처럼 세상에 가득함. 膠舊排新(교구배신): 옛것에 완고하게 달라붙고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배척함. 隨時取中(수시취중):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가장 적절한 중도를 선택함. 전통을 고수하거나 신문물을 맹종하는 양극단을 모두 피하는 태도. 王考(왕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 響山公(향산공): 글쓴이 이우성의 조부로 보임. 정확한 성명은 추가 자료 확인이 필요함. 盧小訥公相稷(노소눌공상직):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1855~1931). 평재가 그 문하에서 학문을 배운 것으로 기록됨. 大本(대본): 학문과 인간됨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 여기서는 유학의 도덕적 원칙을 뜻함. 時務(시무): 그 시대와 사회가 실제로 해결해야 할 정치·경제·제도상의 과제. 西學(서학): 서양의 학문과 문물. 본문에서는 정치·법률·기계 기술을 포함함. 綱羅剔抉(강라척결): 자료를 널리 수집하고 그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세밀하게 가려냄. 原委(원위): 어떤 일의 기원과 전개 과정. 井制(정제): 정전제(井田制)와 같은 토지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成賦(성부): 세금이나 부세 제도와 관련된 표현으로 보임. 해당 두 글자는 사진상 판독과 의미의 추가 확인이 필요함. 酌古參今(작고참금): 옛 제도를 헤아리고 현재의 사정을 참고함. 施措(시조): 실제로 시행하고 조처함. 嚴確(엄확): 원칙을 엄정하고 확고하게 지킴. 淨灑亭舍(정쇄정사): 평재가 동지들과 경전을 강론하던 공간으로 보이나, 명칭의 정확한 한자와 음은 추가 확인이 필요함. 斯文(사문): 유학의 도통과 학문적·도덕적 문화. 性命理氣(성명이기): 인간의 본성과 천명, 그리고 세계를 이루는 원리와 기운에 관한 성리학의 핵심 개념. 日用彝倫(일용이륜): 일상에서 언제나 지켜야 할 변함없는 인간관계의 윤리. 表裏交修(표리교수): 내면의 마음과 외면의 행동을 함께 닦음. 僕隸知化(복례지화): 가까이에서 시중드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덕에 감화되었다는 뜻. 글 마지막의 號는 다음 쪽 첫머리의 平齋와 이어짐. 따라서 “公諱泰直字敬夫號平齋”, 곧 “공의 이름은 태직, 자는 경부, 호는 평재”라는 문장이 완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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