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맥락과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과정을 겪습니다. 듣는 사람이 해당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점에 파악하게 된 상황 맥락, 지식, 신념에 기반해서 자신이 들은 것을 자기 관점에서 추론하고 자연스럽게 재해석합니다. 특히 주어진 정보가 모호하거나 이해하는 입장이지만 해당 화두에 대한 자기 생각이 많을 때 이러한 재해석이 더 적극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어진 입력 정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정보를 능가하는 추론을 덧붙여서 기억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주어지는 정보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추론하는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도식(schema)’이라고 합니다. 도식은 사람, 사건, 혹은 개념에 관한 추상화된 일반적 지식이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밥 먹고 나왔어’라는 표현은 식당에서 메뉴를 선택하고 음식을 먹은 뒤 계산을 마치고 나온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거나, 초대를 받은 것이어서 계산은 하지 않았거나, 배가 불러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 와서 책을 좀 읽었어’라는 말은 책을 꺼내 펼치고 조용히 앉아 집중해서 읽었다고 추론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몇 페이지만 보고 덮었거나, 책을 펼쳐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조금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책 너도 읽었어?’라는 질문과 ‘응, 읽었어’라는 대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책을 다 읽고 내용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추론되지만, 실제로는 책의 일부만 읽었거나 서문과 목차만 훑어보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때로는 단순히 대화를 끝내기 위해 읽었다고 답했을 수도 있다. ‘영화 보러 가자’라는 표현은 극장에서 표를 사서 객석에서 관람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둘만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한 행사나 활동일 수도 있으며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보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언어 표현을 통해 도식적으로 정보를 보완하고 추론하지만, 실제 행위는 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식적 사고가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오해나 왜곡된 해석을 초래할 여지도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도식적 사고와 실제 사실은 언제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식적 사고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이용한 광고 문구를 살펴보도록 합니다. 본고에서 언급한 실제 광고의 예시들은 김완석(1992:38-47)에서 언급된 것들입니다. 해당 광고 문구가 어떻게 소비자를 오도하는지에 대해 좀 더 상세히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불완전 비교급(incomplete comparatives)을 들 수 있습니다. 불완전 비교급은 광고에서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기법으로, 비교급 형용사를 사용하면서도 비교 대상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이 기법은 소비자로 하여금 특정 제품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지만, 그 실제 근거는 불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더 오래 지속되는 신선함’이라는 문구는 무엇과 비교해 신선함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다른 제품보다 뛰어난 특성으로 받아들입니다. ‘더 부드럽고 풍부한 맛’ 역시 특정 맛과의 비교가 없이도 소비자로 하여금 품질이 우수하다고 믿게 합니다.
‘더 강력한 세척력’, ‘더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 ‘더 편안하고 완벽한 착용감’ 같은 표현들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소비자들은 제품이 경쟁 제품보다 뛰어날 것이라고 추론하게 됩니다. 심지어 ‘더 안전한 성분’, ‘더 오래가는 배터리’, ‘더 깊고 풍부한 색감’ 같은 문구는 형용사와 비교급이 조합된 것으로 제품의 우월성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나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오도적 추론을 유발합니다.
불완전 비교급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장점을 암시하며 호감을 사는 데 효과적이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허위나 과장 광고로 간주될 소지가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문구를 보고 각자 자신들의 경험이나 도식을 바탕으로 해석하며 제품의 품질을 알아서 추론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이러한 광고 기법이 이용하고 있는 전달 방식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광고에서는 부정의문문(negative interrogative)을 통해 소비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광고에서 ‘왜 한국에서 최고의 브랜드가 나올 수 없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소비자는 해당 브랜드가 최고의 브랜드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추론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고에서는 질문만 했을 뿐, 자신들이 최고의 브랜드라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을 제시한 게 아니라, 소비자가 스스로 답을 내리며 특정 상품의 우월성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표현 기법에 해당합니다.
‘여자와 커피는 부드러워야 좋은 것 아니에요?’라고 묻는 것은 부드러움이 중요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 아니라 해당 커피가 부드럽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소비자에게 암시합니다. 주장의 효과를 가지는 질문인 것이지요. 광고에서 ‘주방 세제는 부드럽고 순할수록 좋은 것 아니겠어요?’라고 묻는 것은 세제의 순한 성분이 상표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제시하면서 해당 제품이 그 중요한 기준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실제로는 질문만 던졌을 뿐입니다. 그러니 혹여 어떤 근거에 의해 순한 세제라는 것이 부정당하더라도 광고주는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기에 비판을 피해갈 수 있게 됩니다.
부정의문문은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제품이 지닌 특정 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광고에서 ‘왜 아직도 무거운 청소기를 사용하시나요?’라고 묻는다면 해당 청소기가 가벼운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편리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 조건을 자랑스럽게 충족했으니까 저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또 ‘피부는 촉촉함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요?’라고 질문하는 것도 해당 화장품은 피부를 촉촉하게 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 단순히 피부를 촉촉하게 한다기보다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장점이 탁월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이 풍기는 당당함에 소비자가 반한다면 말이지요. ‘운동화가 가벼워야 피로감이 적은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도 해당 운동화가 기존 제품보다 더 가벼운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암시하지만, 해당 제품이 얼마나 가벼운지는 전혀 설명된 바 없기에 소비자 스스로 의심하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