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시니어) 문해교육

시니어 문해 학습자의 변화 과정

literacy-talktalk 2025. 2. 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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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수상작

 

내가 보네 내가 읽네

 

                                                                                             박문옥(신갈야간학교)

 

처음에 학교 올 때

태평역에서 기흥역까지

정거장을 손으로 꼽았습니다

안내하는 소리를 못 들을까봐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왔습니다.

두 손이 꽉 차고

네 손가락을 더하면 내립니다

 

이제는 자막에 나오는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진짜 모를 줄 알았는데

못 볼 줄 알았는데

내가 보네 내가 읽네

이렇게 배면 읽을 수 있구나

기흥역까지 오면서 울었습니다

 

이제 한 자씩 잘 읽겠습니다

신기하고 기특한 일입니다

다른 것 다 필요없습니다.

나도 읽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수상작

 

내 이름은 정복순

 

                                                                                            정복순(울산남부도서관)

 

글을 모를 때에는

마트에 가면 □□□

은행에 가면 □□□

버스를 탈 때도 □□□

온통 모르는 반간 투성이!

이제는

마트에 가면 율무차

은행에 가면 번호표

버스를 탈 때도 백육번

내 이름은 정복순

 

내 이름을

적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노인 문해 학습자의 시에서 나타나는 ‘눈물’과 ‘울음’은 단순히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감정들이 해방되는 순간의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 눈물과 울음은 자기 존재의 확인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보네 내가 읽네>에서 박문옥 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의 글자를 읽어내는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확인합니다. 그동안 글을 읽지 못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했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자막을 읽고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독립된 존재로서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글을 모르는 자신을 비하하거나, 불안하고 위축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면, 이제는 자신을 긍정하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억눌렸던 자아가 드디어 자신을 온전히 표출할 수 있게 된 감동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이 울음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억압과 소외가 해소되는 과정입니다. 글을 모를 때,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던 경험은 세상에서 자신이 소외된 존재임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낼 수 없는 것으로써 마음 속에 커다란 억압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문해 교육을 통해 글을 배우고 자신의 이름을 또렷하게 적을 수 있게 된 순간, 그동안 느껴왔던 소외와 억압이 해소되며 감정이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감정 폭발은 단순히 글을 알게 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자신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의 상처와 아픔이 씻겨 내려가는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두 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눈물'은 성장과 성취의 기쁨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문해교육을 통해 글을 배우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일상에서 불편함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노인 학습자들에게 큰 도전이자 성취의 과정입니다. 이 도전과 성취가 결실을 맺는 순간, 그동안의 노력과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르며, 성장한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진짜 모를 줄 알았는데, 못 볼 줄 알았는데’에서는, 자신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이제는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그 변화를 실감하면서 흘리게 되는 눈물은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자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변화를 느끼면서 젖어드는 감정으로서의 울음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는 다리가 됩니다. 글을 모르던 시절의 자신과 이제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 변화가 주는 충격과 감동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두 시 모두에서 과거의 어려움과 현재의 성취가 마음속에서 교차하는 가운데 샘솟는 눈물은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위로하고,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을 자축하는 감정의 표출이 됩니다.

 

이 작품들 외에도 많은 문해 학습자의 글 속에는 ‘눈물’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눈물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억압과 소외가 해소되고, 성장과 성취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정적 연결이 담긴 깊은 울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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