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화용론

감정문해력과 피드백

literacy-talktalk 2025. 4. 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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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정문해력(emotional literacy)과 피드백(feedback)의 연관성

우리는 흔히 피드백이라는 말을 들으면,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부족한 점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이나 교육, 지도, 훈육 같은 맥락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피드백의 본질은 단순한 지적이나 교정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피드백이란 상대에게 일정한 반응을 줌으로써, 그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인식하고 조정하게 도와주는 과정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 해소가 목적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성장을 고려한 말의 기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입장에서 본 자기 말의 정당성에 집착하고,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의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정당화하며, 그 말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은 충분히 설명하면서도, 상대의 감정은 돌아보지 못하는 이러한 말은 그 어떤 해결력도 가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개선의 방향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이러한 말을 애써 하는 것은 감정문해력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감정문해력은 ‘감정을 읽고 이해하며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감정이라는 내면의 신호를 일종의 ‘정보’로 받아들이고, 그 정보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감정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말이 논리적으로 맞기만 하면, 감정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여깁니다. 감정문해력이란 감정이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민감하게 파악하는 능력이기에 이 능력이 높은 사람은 말하기에 앞서 ‘내가 지금 하는 이 말이 상황을 호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악화시킬 뿐인가’를 자문합니다. 때로는 옳은 말조차도 관계의 틀 안에서는 유보되거나, 더 적절한 시점과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문해력은 바로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감정문해력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이해하며, 그 감정을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적절하게 조절하고 표현하는 능력이기에 자신의 감정이 말과 행동을 통해 관계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를 예측하고 조정합니다. 이 능력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이라는 형식으로 배출해버리고는, 그 말이 관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감정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말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 상태를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며, 이 말이 지금 정말 필요한 말인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미리 점검하고 조정합니다.

 



❚2  감정문해력이 결여된 피드백

피드백은 본래 상대방의 행동이나 표현에 대해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이 미래의 변화나 조율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의사소통의 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감정문해력이 결여된 피드백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말하는 사람의 감정 해소에만 집중되며, 결국 상대방을 위축시키고 관계를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요?” 또는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어떻게 같이 일하자는 거예요?”라는 말은 피드백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인격에 대한 공격이며, 수치심과 무기력을 유발하는 언어적 자극에 가깝습니다. 발화자는 본인의 감정이 ‘정당한 것’이라는 확신 아래, 논리적 타당성을 앞세우며 표현하지만, 수신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으며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깊이 상처받게 됩니다.


❚3  감정문해력이 충족된 피드백

감정문해력이 충족된 피드백은 말하는 사람이 감정적 동요를 충분히 인식하고 조율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사실’에 기반하여 ‘미래 지향적 조율’을 목적으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자료가 오늘까지 꼭 필요했는데 아직 받지 못해서 일정 조정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다음엔 미리 조율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은 상대방의 행동을 비난하기보다 협업을 위한 상호 조정의 기회를 열어주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피드백은 감정의 배출이 아닌 정보의 전달이며, 갈등의 유발이 아닌 관계의 회복과 조율을 지향하게 됩니다.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절제되어 있으며 상대방의 수용성을 고려한 언어 전략으로 다듬어져 있습니다.

피드백의 본질은 상대를 ‘무릎 꿇게 하는 말’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조정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언어적 다리입니다. 감정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피드백을 말하는 순간, “이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 피드백이 상대가 변화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내면적으로 수행하며, 그에 따라 표현 수위와 시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감정의 즉각적인 해소보다 관계의 흐름과 상대의 내면 반응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감정문해력이 결여된 피드백은 종종 말하는 사람에게도 후회를 남깁니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위축되었어.”라는 자책은 피드백이 관계를 개선하기보다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반성을 불러오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여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피드백을 했던 그 순간에는 분노가 해소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감정이 처리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전이되거나 왜곡되어 남게 됩니다. 이처럼 감정 해소의 욕구가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경우, 말이라는 도구는 본래의 정교함과 가치를 잃고, 관계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전락할 위험이 높습니다. 감정에 휘둘려 무심코 쏟아낸 말은 그 순간 상대방의 마음을 짓밟을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품격도 함께 추락시키는 이중의 손실을 불러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상대는 변화보다는 방어를 택하게 되고 피드백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감정문해력은 단지 감정을 잘 표현하는 능력이 아니라, 감정이 언어를 통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측하고 조율하는 고차원의 능력입니다. 말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하며 함께 살아가는 데 쓰일 수 있으려면, 그 안에 감정을 읽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이 함께 담겨 있어야 합니다. 피드백은 감정을 담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넘어서 관계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설계하는 언어입니다. 감정문해력이 높을수록 그 언어는 날카로움보다 온기를 품고 있으며, 그 온기는 결국 말보다 더 깊이 오래 남게 됩니다. 감정문해력이 있는 사람은 감정의 표출이 곧 감정의 해소가 아님을 알고 있으며, 감정의 표현은 관계를 회복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수단임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말할 때도, 상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조율하고 표현합니다.

피드백은 ‘평가’가 아니라 ‘대화’이고, 상대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감정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피드백은 결국 자기방어적이고, 우위 확보를 위한 말싸움으로 전락합니다. 반면 감정문해력이 있는 피드백은 상대의 감정적 안전을 지켜주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열어줍니다.

진정한 피드백은 상대가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하고, 나아가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말의 기술이며, 이 모든 과정에는 감정문해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감정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말이 정답인지를 따지기보다,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를 먼저 헤아립니다. 그리하여 말의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신, 말의 온도로 관계를 살려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피드백은, 말로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함께 살아가는 힘을 주는 말입니다. 

 

 

 

(※  내가 기억하는 '멋진 피드백' 또는 내가 만났던 '훌륭한 감정문해력을 가진 분'을 추억해 봅시다. 피드백, 감정문해력과 관련한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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