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듣고, 수많은 사람과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나와의 대화’는 내 안의 감정 흐름을 조율하기도 하고, 나 자신에 대한 인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활동에 해당합니다.
❚1. 방어기제를 뛰어넘기
우리의 뇌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 위협을 느끼거나 자존이 손상될 위기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이를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부릅니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위협을 느끼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감정적 충격을 완화하고 정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뇌의 자동 반응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방어기제는 생존의 도구이자 감정적 붕괴를 막는 일종의 보호 장치입니다.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으로, 반사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인 판단 이전에 작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행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방어기제는 감정과 사고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이성적이며 자동적인 심리적 전략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인 방어기제로는 감정을 외면하는 ‘부정(Denial)’,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합리적인 이유로 포장하는 ‘합리화(Rationalization)’, 감정을 실제 대상이 아닌 더 안전한 대상에게 옮기는 ‘전이(Displacement)’, 실제 감정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는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지만, 특정한 방어기제가 반복되거나 고착이 일어나면 자기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서 흐름이나 대인관계의 방향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괴로운 감정을 처리하기 어려워서 억누르는 ‘억압(Repression)’의 경우를 예로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무례하게 말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해 봅시다. 나는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괜찮아, 그냥 넘어가자'하는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건강하게 처리하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지금 나 좀 불쾌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그것을 표현할지,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넘어갈지를 판단하는 자기 삶의 주도권을 사용하는 힘을 발휘하도록 합니다. 그 사람에게 정중하면서도 분명하게 표현하거나 '저 사람도 실수한 거 같아'와 같이 내면에서 조율하고 내려놓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습관이 쌓이면, 감정이 막히거나 터져버리는 일이 줄어들고, 자신의 감정과 관계를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내적 탄력성이 자라게 됩니다.
또 다른 방어기제인 '전이(Displacement)'의 경우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합니다. 상사에게 꾸중을 들을 때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꾹 참았다가 퇴근 후 집에 와서 가족에게 괜히 날카롭게 말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것은 억눌린 감정을 더 안전한 대상으로 옮겨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직접적인 원인을 향해 표현하지 못하고 그와 무관한 다른 대상에게 감정을 흘려보내는 일이 반복되면 문제의 핵심은 해결되지 않은 채 관계의 엉뚱한 지점이 손상될 위험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는 '지금 내가 왜 이 말을 이렇게 날카롭게 하고 있지?', '진짜 속상한 건 그때 그 일 아니었나?'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면서,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왜 다른 사람에게 옮겨졌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 안에 쌓여 있는 감정을 진짜 대상에게 어떻게 표현하거나 정리할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지요.
다음날 상사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부담되더라도 '어제는 제가 많이 당황해서 말씀을 잘 못 드렸는데, 그 부분은 조금 더 설명드릴 기회를 갖고 싶어요'와 같은 식으로 정중하게 말할 수도 있고, 마음속에서 '그분도 여유가 없는 것 같아'라고 정리하면서 감정을 자기 안에서 조율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엉뚱한 곳으로 전이하지 않고 본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 나도 모르게 처리하고 있는 일련의 반응을 인식하고 스스로 조율하는 작업이 쌓이면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주도적으로 다루는 내적 탄력성이 자라나게 됩니다.
❚2. 외부의 메시지를 완성하는 사람은 나 자신
나에게 벌어진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말과 자극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조언, 충고, 비평, 무심한 한마디 말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언어적 자극이 됩니다. 그런데 그 어떤 자극도 자동적으로 최종적인 ‘메시지’가 완결된 형태로 나를 흔들지는 않습니다. 모든 외부 자극은 나의 내면을 통과하는 인지적 과정, 즉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만 나에게 의미 있는 정보로 자리매김되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나에게 어떠한 ‘정보’로 완성되는 과정에는 나의 해석이 개입됩니다. '자극' 자체가 나의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으며, 나의 '해석' 방식이 그것을 어떻게 자리매김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 주어지는 모든 언어적 표현은 ‘기표(記表, signifier)’일 뿐이며, 그것이 나에게 어떤 ‘기의(記意, signified)’를 가지는지는 전적으로 나의 내면 구조 안에서 결정됩니다. “요즘 피곤해 보여”라는 말은 누군가의 단순한 관찰일 수 있지만, 그것이 ‘나를 무시하는 말’이 될지 ‘나를 걱정해주는 말’이 될지는 듣는 사람인 나 자신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평소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 즉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기 피드백의 방식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래서 ‘자기 피드백’은 언어를 내면화하는 방식이자 인식이 진행되는 과정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기 피드백은 내가 외부의 메시지를 어떻게 수용할지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언어적 필터’이기 때문에 어떤 말을 들었느냐보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내용으로 규정하느냐가 삶에 더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의 사고와 판단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든 과정에는 바로 이 ‘의미 부여 능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자극은 완성된 메시지가 아니며, 그것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기 피드백은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가 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지는 '인식 형성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3. 자존감이 반영되는 자기 피드백의 언어
자기 피드백은 자존감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내면에서 자신을 대하는 말투 자체가 이미 비판적이고 위협 지향적입니다. 실수를 했을 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역시 난 안 돼'라는 말로 자신을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그와 다르게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실수를 했더라도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워가는 거야'라고 자신을 수용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곧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에 대한 삶의 태도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는 자존감이 높아야만 자존감 높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존감이 높은 사람처럼 행동해보는 것이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하고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제안합니다.
{※ 참고로, ‘인지행동치료’는 부정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생각을 점검하고 그것을 보다 균형 잡힌 사고와 행동으로 교정하면서 삶의 방식을 개선하도록 돕는 치료 접근법입니다. 이 치료법은 1960년대 미국의 정신과 의사 아론 벡(Aaron T. Beck)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오늘날 가장 과학적 근거가 탄탄한 심리치료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례로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거야'라고 상상하며 자신 있게 말을 꺼내보는 것, 자신에게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라고 따뜻한 격려를 건네보는 것, 누군가 나를 얕보는 태도를 보여도 내 표정과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그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연습은 결국 뇌가 받아들이는 정체성에 영향을 주고 행동을 통해 감정과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건강한 자기 피드백은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바로 보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실수한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반성하게 만들고,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내가 지향하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정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누군가의 무례한 말 앞에서 조용히 선을 그어보는 것, 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해 보는 것, 지쳤을 때 '지금은 쉬어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등은 자기 피드백의 근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들이 누적될수록 외부의 평가(간섭, 시선)에 덜 휘둘리고 나를 조절하고 회복할 수 있는 자기효능감에도 힘이 누적됩니다. 자신을 향해 한 말이 스스로를 위축시키는지 회복시키는지를 느끼면서 조율해 나가기를 거듭할 때 우리는 내면으로부터 서서히 성장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피드백 과정에서는 타인의 말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도 일어납니다. 상대의 말이 완벽한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조율하는 일들이 내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지만 가장 강력하게 나를 변화시키는 말은 결국 '내가 내게 하는 말'입니다. 성숙한 자기 피드백은 삶의 고비마다 나를 다잡아주고 실수의 순간마다 나를 비난하지 않고 회복으로 이끌어주는 내면의 힘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을 성찰하고 다듬는 것은 삶을 다루는 태도를 설계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기대화(자기피드백)가 나의 감정 흐름이나 상황 대처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런 경험을 함께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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