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화용론

서로의 진짜 의미를 알아가는 “의미 협상”

literacy-talktalk 2025. 5. 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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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하기 쉽습니다. 상대방 말의 의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말을 듣는 나는 그저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주고 받는 '말(언어)'이라는 것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각자 다른 맥락, 경험, 감정 상태에서 말을 이해하기 때문에, 같은 말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에 대한 리터러시’, 다시 말해 ‘서로의 말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 소통 감각’이 절실히 필요해집니다. 의미는 발화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청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구성물이기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가 “그 영화, 정말 별로였어요”라고 남긴 평을 보았다고 해봅시다. 이 문장을 본 다른 사람은, 의도와는 다르게 그것을 자신에게 한 말처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좋다고 여기저기 칭찬하고 다녔는데… 치, 잘난 척하네.”라며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성자의 실제 의도는, 영화의 줄거리나 인물 전개와 같은 특정 측면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의미는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경우, 만약 댓글로 “어떤 점에서 별로였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그 영화가 정말 좋았거든요”라고 질문을 남겼다면, 대화는 단순한 오해를 넘어 서로의 관점을 나누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친구가 “이번 여행은 나 혼자 가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상대가 아무런 확인 없이 곧장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랑 같이 가기 싫다는 뜻인가? 내가 싫어진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의 실제 의도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면의 필요에서 나온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때, 만약 상대가 “혼자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이 어떤 의미야? 나와 같이 가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야?”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면, 친구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이번에는 혼자 시간을 좀 보내고 싶어서 그런 거야”라고 설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질문도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단정해 버린다면, 불필요한 감정적 거리감이 생기고, 관계가 점차 소원해질 위험도 커집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그 전달이 항상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말을 듣고도 전혀 다르게 이해하거나,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말의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해를 줄이고 말의 의미를 함께 구성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의미 협상입니다. 의미 협상이란, 대화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모호함을 줄이고 서로의 의도를 더 정확히 파악하고 조율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고 각자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말에 대한 이해의 정확성을 높이고 상호의 인식을 조율하기 위한 능동적인 소통 과정에 해당합니다. 


이 협상은 단지 ‘어떤 말을 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하느냐, 그리고 그 말을 어떤 태도로 주고받느냐가 함께 작동해야 비로소 온전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말로는 “이해했어”라고 하면서도 표정은 불편하거나,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눈빛이나 표정은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말과 태도 사이의 불일치 속에서 ‘진짜 의미’를 감지하게 됩니다. 따라서 의미 협상은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을 동시에 고려하며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 협상의 노력은 구체적인 말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도 실천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직접 묻는 표현도 가능하지만, 때로는 조급해하지 않고 잠시 기다려주는 것, 말없이 미소를 짓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사고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더 깊은 의미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말과 태도는 서로를 보완하며 소통을 완성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러한 의미 협상의 대표적인 표현 방식의 구체적 예시입니다.

 


1.  확인 요청 (Confirmation Check)

 

상대의 발화를 내가 올바르게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고자 할 때, 확인 요청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단순히 “맞아?”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내용을 다시 말해보는 방식으로 질문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입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라는 거야?”
“내가 잘 이해한 게 맞아?”
“이렇게 해석해도 될까?”
“그러니까 너는 ~~를 말하는 거지?”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인데, 맞아?”
“네가 말한 걸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
“혹시 ~~라는 뜻으로 말한 거야?”

이러한 표현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태도에는 잠시 멈추고 기다리는 여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경청하는 표정, 중요한 말을 메모하며 듣는 자세 등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의 말을 단순히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이와 같은 확인은 오해를 줄이는 데 기여하며, 서로의 발화를 존중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2. 명확화 요청 (Clarification Request)

 

상대의 표현이 모호하거나 충분히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명확화를 요청하는 표현이 유용합니다. 이는 상대의 말을 가로막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히 알고자 하는 의사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
“이 부분을 조금 더 풀어서 말해 줄래?”
“그게 무슨 뜻이야? 조금 더 쉽게 말해 줄 수 있어?”
“네가 말한 ~~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거야?”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거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래?”
“다른 말로 설명해 줄 수 있어?”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을 할 때, 부드럽게 미소 짓기,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하기, 눈을 마주치며 호기심을 드러내는 표정 짓기와 같은 태도는 대화 상대가 불편함 없이 설명을 이어가도록 돕습니다.
명확화 요청은 ‘잘 모르겠다’는 말보다도 훨씬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상대의 표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3. 재진술 (Reformulation)

 

재진술은 내가 이해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표현해 보는 방식입니다. 이는 이해의 차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며, 소통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라는 뜻이지?”
“네가 말한 걸 다른 말로 하면 ~~라는 의미야?”
“그럼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지?”
“즉, 네가 의미하는 건 ~~야?”
“네 말의 핵심은 ~~라는 거야?”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맞을까?”
“그럼 결론적으로 ~~라고 이해해도 될까?”

이런 재진술을 할 때는 말을 천천히 정돈하면서 표현하는 태도, 핵심을 짚으며 손동작으로 정리해 주는 행동, 말한 후 잠시 멈춰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태도가 동반되면 좋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내가 단지 듣고 있다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상대에게도 자신의 말을 점검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4. 이해 확인 (Comprehension Check)

 

이해 확인은 내가 한 설명이나 발언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설명을 반복하거나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도, 상대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내가 설명한 거 이해됐어?”
“혹시 여기까지 이해하는 데 문제 없어?”
“이제 좀 더 명확해졌어?”
“내가 말한 게 잘 전달됐어?”
“내 설명이 충분했을까?”
“혹시 모호한 부분이 있어?”
“잘 이해했는지 궁금한데, 괜찮아?”
“네가 이해한 걸 한번 말해 줄 수 있어?”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를 점검하거나 채점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도움을 주고자 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걱정이나 배려가 담긴 눈빛,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는 자세, 상대가 반응할 시간을 주는 침묵의 여유 등은 대화의 온도를 낮추고 안정감을 주는 방식입니다.
이해 여부를 묻는 태도는, 말의 전달뿐 아니라 관계의 톤을 부드럽게 조율하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5. 다른 표현 요청 (Requesting a Paraphrase)

 

상대의 말을 한 번 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말의 맥락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할 때 유용한 전략입니다.

“방금 말한 걸 다시 한 번 다른 말로 표현해 줄 수 있어?”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줄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보면 어떻게 돼?”
“한 번 더 요약해 줄 수 있어?”
“좀 더 짧고 명확하게 다시 말해 줄래?”
“핵심만 정리해서 다시 좀 말해 줘!”

이때 부탁의 어조를 띠는 미소, 상대의 눈을 보며 집중하는 태도, 부드럽고 여유 있는 어조는 요청을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요청하는 사람의 태도가 권위적이지 않을 때, 설명하는 사람은 자신의 표현을 조율하거나 다듬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화를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

 


6. 의사소통 장애 복구 (Repairing Miscommunication)

 

말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었을 때, 이를 적절히 수정하는 과정은 의미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단계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풀기 위한 조심스러운 표현이 필요합니다.

“아,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내 말은 ~~였어.”
“내가 말하려던 건 그게 아니라 ~~야.”
“내가 좀 더 명확하게 말해야 했는데, 다시 설명할게.”
“아, 네가 그렇게 이해했구나! 근데 내 의도는 좀 달랐어.”
“혹시 내 말이 혼란스럽게 들렸다면 미안해, 다시 말할게.”
“지금 내가 말한 게 좀 애매했지? 정확한 의미는 ~~야.”

이런 말을 할 때는 사과의 눈빛, 낮은 고개, 가슴에 손을 얹는 등의 진심을 담은 비언어 표현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또한, 상대가 말한 내용을 끝까지 듣고 천천히 응답하는 태도는 방어적인 반응이 아닌 대화 회복의 의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말을 정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대화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미 협상은 말의 기술이라기보다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이기도 하고 함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질문을 하는 방식,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 눈빛과 자세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 협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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