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교육의 힘: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현장>
데이비드 아처(David Archer) & 패트릭 코스그레이브(Patrick Costgrave) 저, 학이시습
1. 책 소개
『문해교육의 힘: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현장』은 문해교육을 단순히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기술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억압받는 민중이 스스로 현실을 인식하고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는 정치적·사회적 실천의 도구로서 문해력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실질적 사례를 바탕으로, 문해력이 어떻게 사회 운동, 조직화, 권력 재구성과 연결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1980년대부터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진행된 문해교육 현장을 깊이 있게 파헤쳐 소개합니다. 엘살바도르의 난민 공동체, 니카라과의 전국 문해운동, 온두라스 농민협동조합, 멕시코 도시빈민 지역, 칠레 군부독재 하의 저항 교육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문해교육이 민중의 삶과 공동체, 정치 참여, 인권 의식 고양과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조명합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문해교육을 개인들의 언어 기능 습득이 아닌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적 주체성을 기르는 과정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책의 주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문해력은 억압 구조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힘이며, 단순 기술을 넘어 사회 변혁의 기초 능력이다.
- 문해교육은 국가 주도의 형식적 교육을 넘어서, 민중 스스로가 현실을 분석하고 조직화하며 권리를 주장하는 참여적 학습 과정이다.
-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사례는 성공과 실패를 모두 보여주며, 문해교육이 사회 구조, 정치 상황, 공동체 현실과 긴밀히 얽혀 있다.
2. 라틴아메리카의 문해교육 방식을, 오늘날 한국에서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문해교육에 적용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문해교육은 흔히 '민중교육, 해방교육, 의식화 운동'이라는 말과 함께 묶입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문해교육은 각 개인의 필요에 의해 삶의 도구로서 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억압받아 온 민중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조직을 만들고, 토지를 되찾고, 권리를 주장하는 일종의 사회변혁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문해교육의 힘>에 나오는 온두라스, 에콰도르, 멕시코, 칠레, 니카라과 같은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문해교육은 늘 불평등한 토지문제, 정치적 억압, 빈곤, 인권침해와 얽혀 있습니다. 온두라스에서는 농민들이 글을 몰라서 땅을 빼앗겼고, 에콰도르에서는 협동조합을 조직했지만 비문해 때문에 결국 엘리트들이 농민을 다시 착취하는 구조가 생겼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글을 배운다'는 것은 곧 '착취의 고리를 끊고, 세상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문해교육을, 2025년 현재 한국 사회, 특히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해교육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사회적 조건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국도 1950~70년대에는 전쟁과 빈곤, 학력격차가 심각해서 문해교육이 사회적 존엄 회복, 자기 목소리 찾기, 기본권 행사와 직결됐습니다. 당시엔 프레이리의 의식화 개념이 꽤나 직접적으로 통했습니다. 글을 배우면 농협 문서를 이해할 수 있고 주민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교육을 포함한 사회 시스템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해교육은 억압을 깨고, 집단 해방을 이끄는 민중교육의 성격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문해교육을 받는 시니어들은 더 이상 억압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기보다는, 디지털 사회로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정보 격차, 사회적 고립, 건강 정보 부족, 자기표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문해교육은 더 이상 '혁명을 위한 의식화'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수단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글을 배우면 스마트폰을 통해 자식들, 손주들과 연락하고, 병원 안내문을 이해할 수 있고, 복지 혜택도 스스로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해교육 역사에 큰 영향을 준 '프레이리'로부터 영감받는 바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체 한국 시니어 문해교육을 두고 '해방', '저항', '의식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표현, 정보 활용, 디지털 적응, 사회적 소통, 개인 역량 강화 같은 실질적이고 실생활에 밀착된 목표가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억압과 해방을 넘어, 소통과 참여, 그리고 개인 삶의 주체성 회복을 위한 문해교육이 지금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일부 이주민, 탈북민, 청년 중도탈락자, 디지털 소외계층은 비판적 사고, 사회 이해력, 자기 인식을 키우는 문해교육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선 프레이리식 접근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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