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시니어) 문해교육

성인 문해교사의 감정문해력

literacy-talktalk 2025. 4. 1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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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해교사에게 왜 감정문해력이 필요한가?

감정문해력(emotional literacy)은 자신의 감정에 그저 빨려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감정 속에 있는지를 인식하고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 이해하는 능력이기도 하고, 자기 감정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할 줄도 아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표정을 읽는다’는 말처럼, 나와 상대방의 ‘감정’이라는 신호를 잘 읽고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1990년대에 들어 심리학과 교육학, 사회정서학 사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정문해력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이론화한 학자는 클로드 스타이너(Claude Steiner)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감정문해력>(Emotional Literacy: Intelligence with a Heart, 1997)에서 감정문해력을 감정지능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스타이너는 감정문해력이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간 관계를 회복적이고 평등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분노나 슬픔, 실망 같은 감정이 외부 탓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타인에게 무비판적으로 투사하거나 방치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일례로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그저 ‘그가 나를 화나게 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왜 그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건강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스타이너는 감정문해력이 어느 개인의 내면적 치유뿐 아니라, 공동체의 갈등을 예방하고 회복하게 하는 사회적 자산으로 보았습니다.   

 


그와 함께 캐서린 위어(Katherine Weare)는 감정문해력을 학교 교육에 도입한 학자입니다. 그녀는 <감정 문해력이 있는 학교 만들기>(Developing the Emotionally Literate School, 2004)에서, 감정문해력이 학습자의 정신건강, 자기조절, 공동체 소속감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였습니다. 그녀는 학교가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읽고 나누는 감성적 성장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단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정서적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성인 문해교육 현장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정문해력은 감정에 대한 단순한 민감성이 아니라, 교육 실천과 인간 발달에 깊이 연결된 역량입니다. 고령의 문해학습자와 함께하는 문해교육 현장에서는 학습자의 정서 상태와 감정 흐름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조율하는 능력을 교사의 핵심 역량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감정문해력은 문해교사에게 선택적인 덕목이 아니라, 교육의 인간적 깊이를 더하는 본질적인 자질이 됩니다.

고령의 문해학습자를 위한 교육 현장에서는 학습자의 정서 상태가 학습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기에 어르신들을 위한 문해교육이 그저 글자를 가르치는 기술적 행위로 간주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시니어 문해학습자를 지도하는 교사에게 감정문해력이 필수 역량인 이유는, 교사의 감정문해력이 학습자의 학습 동기를 촉진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학습자들은 오랜 시간 배움에서 멀어져 있었고, 과거 학습 실패나 소외의 경험으로 인해 ‘내가 과연 배울 수 있을까?’하는 자기 역량에 대한 의심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 저 밑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까지 자신의 지적 역량에 대한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학습자들은 정서적인 지지가 충분해야 제대로 집중하고 이해의 머리가 굴러갑니다. 감정문해력이 있는 교사는 이러한 불안과 망설임의 감정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언어와 태도로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습자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배움에 참여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게 됩니다.

 

시니어 학습자에게 실수나 기억의 누락은 자신을 다시 ‘못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기 쉽습니다.  그런 때에 교사가 무심하게 지적하거나 지나치게 교정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학습자는 쉽게 위축됩니다. 반면 교사의 감정문해력은 학습자가 학습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실패와 좌절을 수용 가능한 경험으로 변화시킵니다. 감정문해력이 있는 교사는 실패의 순간에 정서적 언어를 사용하여 학습자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그 실수가 자연스럽고 성장 가능한 일부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교사의 도움으로 감정적으로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를 통해 학습자는 학습을 위한 시도를 지속해낼 수 있게 됩니다. 


감정문해력이 있는 교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학습자가 '존재 자체로서 존중받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합니다. 문해학습자들은 그저 읽고 쓰는 법을 기능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학습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사회 안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받게 됩니다. 교사의 감정문해력이 높다면, 학습자의 눈빛, 말투, 표정, 침묵 속에 담긴 감정의 메시지를 읽고, 그에 맞는 태도로 응대합니다. 그래서 교사와 학습자는 지식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을 넘어서, 사람 대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학습자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시키게 됩니다. 


고령 학습자들은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을 수 있으며,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교사가 학습자의 감정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식 중심의 말만 이어갈 경우, 학습자와의 마음은 멀어지고 공동체의 신뢰 관계도 약화됩니다. 감정문해력이 있는 교사는 말실수나 오해가 생겼을 때 그것을 빨리 회복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러한 대응 방식은 학습 공동체의 전체적 분위기와 공동체의 건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시니어 학습자는 지식보다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감정의 연결을 통해 성장합니다. 감정문해력은 문해교사가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학습자와 함께 ‘배움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시니어 문해학습자에게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공부란 본래 무언가를 알기 위해, 그리고 그 앎을 삶에 활용하기 위해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과 의미는 배우는 사람의 나이, 삶의 배경, 현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젊은 학습자는 주로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공부합니다. 자격을 얻고, 시험에 통과하고, 사회적 성공에 가까이 가기 위해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니어 문해학습자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젊은이들의 경우처럼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시니어 학습자들이 문해교육에 참여하는 이유는 단순히 글자를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병원 안내문을 읽고 싶고, 자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고, 버스 노선을 혼자 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필요도 있지만, 그런 기능적 필요를 느끼는 차원을 넘어서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배워가는 과정 자체가 ‘나’라는 존재를 회복시키고, 삶의 활력을 되살리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학습자들은 글자를 익혀 무언가를 성취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배우는 그 행위 속에서 뇌가 활성화되고 감정이 따뜻해지고 삶이 재미있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손으로 글자를 쓰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맞아요, 잘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자체로 자신이 살아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됩니다


시니어 학습자에게 공부의 목적은 지식을 갖추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배워가는 여정 속에서 삶이 살아나는 경험에 있습니다. 지식을 삶에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을 배우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 삶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 배웁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시니어 문해학습자들에게는 공부가 ‘절박한 생존’이 아니라 ‘존엄을 되찾는 회복의 도구’가 되는 이유입니다.



❚3  그러므로 문해교사의 교수활동 중심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향해 나아가는 학습자’여야 한다.

학습자의 공부 목적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향해 나아가며 살아가는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교사의 교수활동도 그에 맞춰야 합니다. 다시 말해, 문해교육 활동의 중심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학습자 중심의 동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식에만 초점을 맞춘 교수활동은 ‘얼마나 많이 가르쳤는가’를 기준으로 수업을 구성합니다. 많은 설명이 이루어지고 교정은 정확해야 하며 진도는 많이 나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시니어 학습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고, 자신이 또다시 뒤처지고 있다는 자책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많아지게 합니다. 지식 중심의 수업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열의에 도취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배우는 사람은 소외되기 쉽습니다.


반면 ‘앎을 향해 나아가는 활동’으로서의 학습에 초점을 맞추는 교수활동에서 학습자는 소외되지 않습니다. 교사는 ‘자신 앞에 있는 학습자가 어디에 있고, 어디에 머물고자 하고, 무엇을 비켜가려고 하는지’ 등을 관찰하게 됩니다. 학습자가 어떤 정황 속에서 어떤 갈증을 느끼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불안, 기쁨, 성취, 당황, 안도—을 함께 이해하려 합니다.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자가 지식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함께 걷는 사람으로서 참여합니다. 교육 활동의 중심축을 ‘무엇을 가르쳤는가’에서 ‘누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에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을 공유할 때, 문해교육은 글자 교육을 넘어서 ‘삶의 교육, 존재 회복의 교육’이 될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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