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장애에 대해 다분히 오해에 기반한 편견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개인의 몸이나 마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인식 속에서 재구성되는 현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장애인이 항상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시각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을 의존적인 존재로 고정시키며 그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들은 다양한 보조기술과 제도적 지원,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도움의 필요가 곧 무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되어야 합니다.
또한 장애인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과 행복은 장애의 유무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부정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비관적인 방향으로 치우쳐 있는 관점으로, 장애를 수용하고 가족이나 공동체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비장애인의 시각을 기준 삼아 장애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많은 매체에서 장애인은 극복의 서사, 곧 ‘장애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극소수의 사례를 부각시키며,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장애인을 투명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장애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인간 삶의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한 특성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을 동질적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 또한 매우 문제가 있는 태도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말이 없거나 숫자에만 강할 것이라고 여기는 식의 일반화는 각 개인의 차이를 무시하게 만듭니다. 장애는 종류도 다양하고 정도도 다르며, 같은 진단명을 가진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을 지닐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장애인 역시 고유한 특성과 개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사회 속에는 또 다른 뿌리 깊은 편견도 존재합니다. 예컨대 장애인은 사회적 자원을 소모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그들을 마치 ‘부담’처럼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장벽을 외면한 채, 장애인의 사회 참여 기회를 제한해 온 사회 자체의 책임을 외면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은 직업을 갖고 세금을 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제한하는 사회적 조건이 문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 보건복지부가 30일 발표한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05만8000원으로 전국가구(483만4000원) 대비 63.3%로 집계됐다. 지출액은 242만2600원으로 전국가구(362만5000원)의 66.9% 수준이다. https://www.news1.kr/economy/trend/5400306)
마지막으로 일부 사람들은 정신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뉴스나 영화에서 과장되게 묘사된 사례들이 그 원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은 타인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배제와 낙인 속에서 더 깊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두기가 아니라 이해와 공존입니다.
이와 같은 편견들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유지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각 사람을 ‘장애인’이라는 말보다 ‘사람’으로 먼저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평등한 시선이 시작됩니다. 진정한 포용은 장애인을 특별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별다를 것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2 편견을 강화하는 창작물
현대사회에서 드라마와 영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사회적 인식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와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장애인을 묘사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태도와 편견이 강화되기도 하고, 반대로 해소되기도 합니다.
많은 작품들은 장애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포용적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묘사 방식이 반복적으로 하나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오히려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슈퍼크립 서사(Supercrip Narrative)’입니다. 슈퍼크립 서사란, 장애를 지닌 인물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상상 이상의 성취나 재능을 발휘하는 비범한 존재로 묘사되는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서사는 장애를 지닌 인물이 상상 이상의 성취나 능력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이야기를 중심에 둡니다.
장애인이 얼마나 비장애인과 비슷하게 행동하거나, 비장애인이 인정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중심으로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일도 자주 벌어집니다. 이런 시선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우리(비장애인)처럼 잘할 수 있다’는 식의 칭찬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장애인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나 다양한 가능성은 무시되고,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핍’으로만 이해하게 만듭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존엄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할 것입합니다.
영화 《레인맨》(Rain Man, 1988)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설정은 자폐인을 특정한 능력으로만 평가하게 만들며, 자폐인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현실을 가리게 됩니다. 드라마 《굿 닥터》(2013) 역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의사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작품 속 인물은 직장 내에서의 의사소통과 사회적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묘사는 자폐인의 자립성을 흐리게 만들고 타인의 배려 없이는 사회에 참여할 수 없는 존재처럼 인식되게 만듭니다.
이와 유사하게, 장애인을 ‘비극적이고 연민을 자아내는 존재’로만 그리는 서사도 여전히 많습니다. 영화 《나의 왼발 》 (My Left Foot, 1989)은 뇌성마비를 가진 예술가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삶을 지속적인 고통과 투쟁의 연속으로만 강조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난의 서사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장애인의 삶을 고통 일변도로 오해하게 만들고 인간적 다양성과 일상성의 재현을 약화시킵니다.
이러한 서사들은 처음에는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장애를 특정한 방식으로만 바라보게 만들며, 사회적 편견을 내면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중은 장애인을 비범하거나 비극적이거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떠올리게 되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장애인은 미디어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3 장애인의 삶을 진정성 있게 재현한 작품들
장애인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때로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장애인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삶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단순히 ‘등장시켰다’는 사실만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재현되는가이며, 그것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회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입니다. 작품이 진정성 있는 재현을 시도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일상과 갈등,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경험, 그리고 존중받는 존재로서의 묘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말아톤》(2005)은 ‘극복 서사’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시선의 복합성을 함께 담아낸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청년 초원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과정을 중심 서사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처음만 보면 ‘비장애인의 기준에 도달해 감동을 주는’ 극복 서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성취 지향적인 구조를 넘어서, 자폐인의 가족이 겪는 혼란과 좌절, 그리고 사회가 보여주는 복합적인 시선을 함께 다룹니다.
특히 어머니의 양육 방식과 심리적 소진(번 아웃), 훈련을 맡은 코치가 처음에는 주인공을 ‘문제적 존재’로만 바라보다가 점차 그 자체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 등은,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긴장과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말아톤》은 자폐를 ‘극복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 국내 대중에게 자폐에 대한 첫 집단적 인식의 창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는 장애인의 일상을 공감 가능한 서사로 구성하여, 감동이 아닌 존중의 방향으로 시선을 전환시켰습니다. 이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단순히 '드라마틱한 캐릭터'를 위해서가 아니라, 비장애 중심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자폐인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특히 주인공 우영우의 일상성은 단순히 ‘생활 장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터에서 직장 동료들과 갈등을 겪고, 연애에 서툴러 상처를 받으며, 가족과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실수도 저지릅니다. 이처럼 불완전하지만 생생한 삶의 질감이 담긴 장면들은, 우영우를 장애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우영우의 인간적인 모습은 단지 감정 표현이나 친밀감의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루틴을 고집하고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감각적 혼란을 겪는 등, 자폐인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성장해가는 모습까지 함께 그렸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균형은 장애를 비정상이나 영웅화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더 피넛 버터 팔콘(The Peanut Butter Falcon)》(2019)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청년을 모험 서사의 주체로 그리면서, 독립성과 주체성을 중심에 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 구조로만 진행되지 않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주인공 ‘잭’은 보호받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능동적 주체로 묘사됩니다. 그가 자신을 레슬링 선수로 키워줄 사람을 찾아 탈출하고, 여행 도중 다양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갈등과 화해를 경험하는 과정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인물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또한 다운증후군을 지닌 배우 잭 고츠에이건(Zack Gottsagen)을 실제 주연으로 캐스팅함으로써, 장애인의 실재성과 표현의 진정성을 높였습니다. 극 중 잭은 보호 시설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로 제약받지만, 영화는 그러한 사회적 구조보다 그의 욕망과 선택을 중심에 둡니다. 그가 스스로 모험을 감당하고, 타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단지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 역시 누구처럼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재현은 장애인을 감동의 대상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인간적 주체로 존중하는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화에서는 장애를 ‘특별함’이나 ‘비극’의 틀로만 재단하지 않고, 그들이 속한 가족과 사회, 일상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포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고정관념을 넘는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동정이나 경외'가 아니라 '존중과 공감'이 되어갈 것입니다.
❚4 창작물 리터러시
미디어 작품 속에서 장애인을 특별하게 감동의 대상으로 소비하거나, 영웅적인 존재로 이상화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장애인을 감동의 도구나 희생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그려내는 서사가 더욱 필요합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함’,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으로서 필요한 지원을 하고 서로의 다름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을 ‘평등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그저 똑같이 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등은, 각자의 조건과 필요를 인정하면서 누구나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계단을 오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듯, 장애를 가진 이들이 사회에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지원이 필요한 이치와 같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동정이나 시혜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구조적 장치이자 권리 보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드라마와 영화는 본질적으로 창작물이지만 작품이 누리는 상상력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자주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지 못하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창작물 속에 등장할 때, 그 재현 방식은 관객의 인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현실을 벗어난 극적인 설정이나 상징적 장치는 이야기의 힘을 높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화되거나 오해가 재생산된다면 창작물의 영향력에 대해 성찰해야 할 필요가 발생합니다.
픽션이라는 점은 창작의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사회적 책임과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해집니다. 우리가 창작물이라는 허구적 작품을 소비할 때 그것이 현실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사회적 통념과 어떤 식으로 교류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태도는 창작물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심오하게 탐색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현실 반영'과 '현실 세계에의 영향력(재생산)'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이해하고, 예술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이 오늘날 필요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입니다.
※ <말아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더 피넛 버터 팔콘> 등(이 외의 작품도 모두 고려)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작품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받았던 점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평범한 시청자(관객)으로서 창작물을 감상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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