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은 196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영상물에 대한 논의로, “내가 속한 공동체”가 타문화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양상을 관찰하면서 그 문제점을 느껴보기 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입장을 바꾸어 우리의 미디어 속에서는 어떤 오해와 선입견이 녹아 있을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경석(2011: 1017-1026)을 참고하여 집필하였습니다.
1960년대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한국전쟁 영화 속 한국과 한국인의 재현 방식은, 타문화 속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되돌아보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이를 통해 한국이 과거 서구 미디어에서 어떤 방식으로 묘사되며, 미디어를 통한 타자의 재현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한국의 공간적 배경과 문화적 표현이 현실과 많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철모(The Steel Helmet)>(1951)에서는 한국 사찰이 비현실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영화 속 ‘장안사’는 한국 불교 사찰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등장합니다. 부처상이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는 동남아시아 불교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양식에 가깝습니다. 사찰 내부에는 한국 불교와 무관한 무속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집니다.
2002년 개봉한 <어나더데이(Die Another Day)>에서도 북한 마을이 붉은 지붕과 야자수, 대나무 장식으로 꾸며져 동남아시아적인 이미지로 대체되었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변장한 한국군의 명찰에는 개인의 이름이나 군번이 적혀 있어야 자연스럽지만, 영화 속에서는 군복의 명찰 위치에 ‘창천1동’이라는 가상의 동네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창천동은 서울에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지만 ‘창천1동’은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군인의 명찰에 동네 이름과 숫자가 적혀 있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여러 모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한국 문화나 한국 군복의 명찰 형식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 사용이 이상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모든 젊은이들(All the Young Men)>(1960)에서는 한국인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한국어를 들어보면 실제 한국어와 전혀 다르거나 단순한 단어를 반복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는 방식도 어색해 원어민이 아닌 사람이 흉내내는 느낌을 줍니다.
그 외에도 한글 간판과 문구에도 오류가 많습니다. <제한된 시간(Time Limit)>(1957)에서는 ‘포로수용소’라는 간판이 ‘포려수용소’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었고, 일부 영화에서는 한글이 뒤집히거나 문장 구조가 이상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는 제작진이 한글을 영화 속의 시각적 요소로만 인식하고 실제적인 관심을 가지고 고증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할리우드 한국전쟁 영화에서, 한국인은 주로 배경 인물로 등장하며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전송가(Battle Hymn)>(1957)에서는 미군 조종사가 한국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장면이 강조되며, 아이들은 단순히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로만 그려집니다. <전쟁 사냥꾼(War Hunt)>(1962)에서는 한국 전쟁고아들이 미군을 따라다니면서 서로 보호받기를 원하고, 한국군 병사들은 군인임에도 전투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미군의 명령을 따르는 모습으로만 그려집니다. 이는 한국인을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한국 지도자 또한 무력한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한반도 상공에서의 임무(Mission over Korea)>(1953)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군 조종사가 운전하는 비행기를 타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지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국가처럼 묘사됩니다. 서울 시장의 집무실은 매우 허름하고 오두막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며 한국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한국을 미국이 보호해야 하는 국가로 각인시키는 기능을 했습니다.
1960년대 할리우드 전쟁 영화 속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로 그려지고, 한국인은 독립적 주체라기보다 미국의 보호를 받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서구 미디어가 자신들이 '타자로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인식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작품을 제작하고 홍보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가 하는 일들에 대한 공감을 나누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소비하는 영상물 속에서 타자를 재현하는 방식은 그 나름의 정치적·이념적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과거의 영상물 사례를 통해 한국에서는 현재 외국인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 한국 사회에 정착한 외국인의 현실적인 모습은 자주 조명되지 않습니다. 미디어 속에서 특정 국가나 민족을 묘사하는 방식은 단순한 창작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배경과 연결됩니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과 한국인이 타자화되었던 사례를 돌아보면서, 현재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미디어를 소비하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할 것입니다.
참고.
심경석(2011), 할리우드 한국전쟁 영화와 한국인/아시아인의 재현, 문학과영상 12권 4호, 문학과영상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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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국제적 인지도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세계적 성공과 더불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주요 방한 20개국의 소셜·온라인 미디어에서 K-컬처에 대한 언급량은 K-팝이 3,682만 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이어 K-푸드가 1,418만 건, K-뷰티가 997만 건, K-콘텐츠(영화, 드라마)가 928만 건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관심의 증가는 한국어 학습 열풍으로도 이어져, 세계 최대의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용자 중 한국어 학습자 수는 1,770만 명으로, 2년 전인 906만 명 대비 95%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 서구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묘사는 과거에 비해 더욱 다양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서치>(Searching)는 한국계 미국인 가족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로,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왜곡 없이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김은 딸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족 간의 유대를 보여주며, 이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2021년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Raya and the Last Dragon)에서는 주인공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인 인기를 반영하며, 한국 문화가 서구 대중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음을 보여줍니다.
캐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은 한국 이민자 가족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계 캐나다인 가족의 세대 간 갈등과 문화적 차이를 현실적이면서도 공감 가게 묘사하여, 서구 사회에서 한국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였습니다. 이와 같이 최근 서구의 영화와 드라마는 한국 문화를 단순한 배경 요소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인과 그들의 삶이 중심 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월간조선_화보로 보는 한국의 1인당 GDP 변천사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001100082&utm
세계일보_“2025년 한국, 경제 규모 12위로 1계단 ↑… 일본은 인도에 역전”
https://www.segye.com/newsView/20241226515763?utm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 부정적 묘사…왜? (2015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073506&utm
그들의 시선 (2018년)
https://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7982&utm
“재미있는” 문화 덕에…할리우드 영화·드라마 속 ‘한국’의 변화 (2020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369713&utm
▸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 외국인들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우리가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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