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사고를 기호화하는 가장 근본적인 매개물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직접 전달할 수 없습니다. 대신, 언어라는 기호 체계를 이용하여 표현하고 공유합니다. 더 나아가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 구조를 형성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생각을 표현하지만, 동시에 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과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언어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 언어는 우리의 경험을 기호화하는 미디어
우리의 ‘경험과 느낌, 사고’는 언어 이전 단계에 존재하는 원천적 정보입니다. 감각을 통해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유하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비언어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반드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언어는 이러한 경험을 코드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우리의 사고는 언어라는 미디어를 통해 표상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경험은 그대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기쁨’이라는 감정을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기쁨 자체를 온전히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감정을 ‘기쁘다’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기쁘다’라는 단어가 우리의 감정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하다’, ‘즐겁다’, ‘가슴이 벅차다’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동일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으며,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도 같은 감정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험은 언어를 통해 표상되면서도, 언어적 표현이 경험의 특성을 다시 규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언어는 단순히 경험을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틀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언어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은 경험의 속성을 바꾸기도 합니다. 어떤 표현으로 옮겨내느냐에 따라 경험이 인식되는 방식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언어는 원천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기만 하는 수단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 구조를 형성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기제(장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것을 보고, 듣는 경험을 했더라도 ‘진중한 분위기였다’, ‘무난했다’, ‘지루했다’ 등 언어적으로 표상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고, 이러한 형용사가 수식어로 사용되면 ‘진중한 분위기의 영화’, ‘무난한 영화’, ‘지루한 영화’ 등의 표현으로 서술되어 대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사고를 재구성
언어는 우리의 경험을 단순히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경험을 규정하고 구조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경험한 것을 정의 내리고, 틀을 짓습니다. '감각이 살아 있더라', '예민하더라', '까칠하더라' 중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가 주목하는 특성에 대한 나의 느낌도 이름을 얻게 됩니다. 단어가 선택되는 순간, 해당 단어가 가지는 정형적인 옷을 입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자로서 자신의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경험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실패했다’라고 말하는 것과 ‘좋은 경험을 했다, 배웠다’라고 말하는 것은 같은 경험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고방식 또한 그 언어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있다/없다', '시간을 쓰다', '긴/짧은 시간'과 같이 <시간>은 특정 언어를 불문하고 공간을 차지하는 물리적인 실체로서 서술됩니다. 그런데 그 미세한 사용 양상을 살펴보면, 한국어에서는 ‘시간을 벌다’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돈처럼 ‘노력하여 획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영어의 경우는 'earn time'이라는 표현은 일상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절약하다'에 해당하는 ‘save time’ 정도만 사용됩니다. 한국어에서는 시간을 ‘관리’해야 할 대상을 넘어 ‘확보’해야 할 자원으로 보는 인식이 들어 있는 것이 관찰되는 것이지요.
우리말을 돌아보면 '나잇값 좀 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서양에도 'Act your age'라는 말로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직설적인 표현이 존재하지만, 살아온 시간의 길이를 '값'이라는 단어와 연결짓지는 않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세상에 태어나서 1년씩 흐르는 시간의 무게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들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인식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표현 방식이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얼핏 우리는 언어를 사고와 경험을 담아내는 ‘포장지’ 또는 ‘껍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포장지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경험의 본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귤을 먹을 때 껍질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귤을 보호하고 규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언어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험을 감싸는 껍질처럼 보이지만, 이 껍데기가 경험의 형태를 결정하고, 우리가 경험을 다루는 방식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학교나 학원 등의 다양한 배움터에서 자신을 가르치는 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Teacher’과 같은 일반명사를 특정 사람을 부르는 말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경우는 ‘Mr. Smith’, ‘Ms. Johnson’, ‘Mrs. Brown’과 같이 성을 붙여 부르는가 하면, 학원 등의 사설 교육 기관에서는 “Instructor Davis(성)” 또는 ‘Coach Lee(성)’와 같이 성을 붙이거나 “John”, “Emily”과 같이 이름(first name)만 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호칭은 상호작용하는 맥락의 분위기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을 지시할 때 존경과 권위를 담는 방식은 상황과 문화라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단어로 불리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 스스로의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언어는 미디어이자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틀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지만, 동시에 ‘언어가 우리의 경험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형성하는 구조적 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어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소통 능력을 넘어, 우리의 사고 구조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됩니다.
이러한 논의는 미디어 리터러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디지털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고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분석하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결국 언어 리터러시의 확장된 개념이며,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미디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기초 단계가 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논할 때, 언어가 가진 매개 역할과 기호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틀로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논하기에 앞서, 언어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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