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해력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특정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사례들만 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사흘’을 ‘4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잘못 이해하는 일이 잇따라 보도되었고, ‘추후 공고’를 특정 학교의 이름으로 착각하는 이야기나 ‘우천 시 장소 변경’이라는 안내를 어느 지역을 지칭한 말로 오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화들은 단어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놓인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할 때 생기는 혼란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때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머, 이 단어도 몰라? 요즘 애들 문해력 큰일이야.’, ‘너 이 단어 알아?’,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아는지 맞춰 보세요.’ 이러한 접근은 문해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어휘력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문해력이란 단순히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글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단어와 문장들이 형성하는 맥락을 읽어내며, 나아가 글을 둘러싼 상황적 배경을 이해하는 폭넓은 능력을 포함합니다.
예컨대, 국가기관의 지원사업 공고문을 읽고 필요한 혜택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청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원 요건과 절차를 이해하고, 복잡한 정보를 자신의 필요와 연결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비록 지원 자격이 충족됨에도 불구하고 신청 자체를 포기하거나 혜택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이 단순한 종이 위에 머물지 않고 스크린 속에서 넘쳐흐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와 광고, 기사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가령, ‘오늘만 한정 할인’이라는 광고 문구는 소비자에게 즉각적인 결정을 요구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광고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충동적인 결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AI가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답할 때, 이는 특정 조건 하에서만 유효한 답변일 수 있음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정보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신뢰할 만한지 판단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와 같은 문장을 접했을 때, 우리는 ‘모든 사람?’, ‘근거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통해 그 신뢰성을 따져야 합니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는 단순히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AI와의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가 ‘가까운 식당’을 검색했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5km 이내 식당’으로 질문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AI의 답변이 완전하지 않을 때, 질문을 다시 구성하거나 단어를 바꿔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 능력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명의 도구가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한다 해도, 전통적인 문해력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될 수 없습니다. 디지털과 AI의 기술적 매력은 우리를 새로운 시대의 경이로움으로 이끌지만, 그 속에서 인간다운 사고와 소통의 근본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적 문해력은 변함없이 우리의 기준점이 되어야 합니다. 전통적 문해력은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을 넘어서, 글의 구성 속에서 맥락적 의미를 파악하고, 정보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들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핵심 정보를 도출해 내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언어 능력은 디지털 미디어와 AI라는 거대한 정보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하고, 메시지의 진위를 가려내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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